현대차 새시대 연 정의선‥혁신DNA 가속페달 밟는다

변윤재 기자 / 기사승인 : 2020-10-14 20:3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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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21년 만에 회장 취임‥디자인 기아 등 경영능력 검증
체질 개선·과감한 투자·전문가 영입·세대교체 활발해질 듯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 가속화
지배구조개편·품질 고도화·실적 개선 숙제 산적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정의선 호가 본격 닻을 올렸다. 20년 만에 총수가 바뀐 현대차그룹은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14일 임시 이사회를 통해 정 신임회장 선임건을 보고했다. 2018년 총괄 수석부회장으로 현대차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왔던 그의 경영 능력에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이사회는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앞서 정 신임회장은 지난해 주주총회에서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대표이사에 올랐다. 지난 3월에는 정몽구 명예회장로부터 현대차 이사회 의장직을 물려 받았다. 이후 정 명예회장이 대장 게실염으로 입원 치료 중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 신임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왔었다. 

 

‘디자인 기아’로 주목

 

1970년 10월 18일생인 정 신임회장은 휘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샌프란시스코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했다. 1999년 현대차 구매실장으로 그룹에 몸을 담은 뒤 현대차 영업지원사업부 부장, 현대차 국내영업본부 부본부장,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본부 부본부장, 현대모비스 부사장 등을 두루 거치며 경영 능력을 쌓았다.

 

정 신임회장의 경영 감각은 2005년 기아차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세계적 디자이너인 피터 슈라이어를 직접 찾아가 영입에 성공했다. 밋밋했던 기아차는 이후 호랑이 코를 닮은 라디에이터 그릴로 통일성 있는 ‘패밀리룩’을 갖추며 쏘렌토R, K7, 스포티지R, K5 등 R시리즈와 K시리즈가 연이어 히트했다. 이처럼 디자인 강화로 브랜드 가치를 높인 것은 물론, 흑자 전환까지 일궈냈다. 

 

2009년 현대차 기획·영업담당 부회장을 맡은 뒤로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속에서도 현대차의 성장을 이끌었다. 2015년 현대차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 출범을 진두지휘했고, 제네시스는 미국 JD파워의 ‘2017 신차품질조사(IQS)’에서 프리미엄 브랜드 1위에 오른 후 올해까지 4년 연속 선두를 지키며 세계 완성차 시장에서 주목받는 브랜드가 됐다. 

 

2017년 고성능 브랜드 ‘N’의 첫 모델인 i30N과 i30 패스트백을 공개하고, 이듬해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대회인 월드랠리챔피언십(WRC)에 참가하며 모터스포트 진출을 본격화한 것도 신의 한 수였다. 지난해 WRC에서 한국팀 사상 최초로 제조사 부문 종합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WTCR(월드 투어링카 컵)에서도 i30 N TCR로 출전한 선수들이 드라이버 부문 종합 우승을 기록하며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현대차 미래 다진 선구안 갖춰

 

특히 시대의 변화에 조응하는 선구안을 갖췄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전 세계 완성차 시장은 대변혁기를 맞고 있다. 전기·수소차를 중심으로 한 친환경·전동화가 두드러지면서 기존의 내연기관차 수요는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정 신임회장도 선제적으로 움직였다. 자동차 50%, PAV(개인용 비행체) 30%, 로보틱스 20%로 사업을 재편하고 ‘C·A·S·E(연결성·자율주행·차량공유·전동화)’를 중심으로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래폼으로 진화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미 2024년까지 5년 간 연구개발(R&D)에만 100조원 추가 투자 계획을 밝혔고 관련 기술 확보를 위해 과감한 투자와 전략적 제휴를 잇따라 단행했다. 미국 자율주행 업체 앱티브와 합작법인인 ‘모셔널’을 설립한 데 이어, 세계적 차량공유서비스 업체 우버와 PAV(개인용 비행체) 공동 개발 추진 중이다. 인텔(통합제어기 센서)·메타웨이브(고성능 레이더)·퍼셉티브 오토마타(인공지능)·오로라(자율주행 개발)·올라(카헤일링)·옵시스(고성능 레이더)·얀덱스(로보택시)·그랩(차량 공유)·오토톡스(차량 간 통신 개발)·웨이레이(홀로그램 AR 내비게이션 개발)·아이오니티(전기차 초고속 충전)·카카오 아이(차량용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 등에 전략적으로 투자하거나 협엽해 미래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또 미국 실리콘밸리, 중국, 독일, 이스라엘, 한국 등 전세계 5곳에 오픈 이노베이션 혁신센터인 현대 크래들을 설립, ICT 융합·공유경제·인공지능(AI)·스마트 모빌리티 등 다양한 분야 혁신 기업과 대학, 정부기관 등과 함께 연구개발을 추진 중이다. 

 

미래 모빌리티로의 적극적 전환은 성과를 내며 순항 중이다. 2025년 연 100만대 이상 판매, 전 세계 점유율 10%대를 목표로 전기차 시장 공략한 결과 현대·기아차는 올 상반기 세계 4위권 전기차 브랜드로 성장했다. 내년에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이 적용된 순수 전기차 브랜드 아이오닉을 출시하고 2025년 하이브리드(HEV) 13종,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6종, 전기차(EV) 23종, 수소전기차(FCEV) 2종 등 총 44개 전동화 모델을 선보인다. 

 

친환경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노력 역시 두드러진다. 수소 생산과 충전, 발전, 운행 등 수소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차근히 진행 중이다. 2013년 세계 최초로 양산형 수소전기차를 선보인 데 이어, 올해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수소전기 대형트럭 양산하고 유럽 시장 진출에 들어갔다. 지난달에는 수소전기차 넥쏘, 수소전기버스 일렉시티FCEV를 사우디 아라비아에 수출해 사우디 아람코와 함께 수소전기차 보급에 나섰다. 수소 생산과 운송시스템 구축도 시작했다. 2030년까지 국내에 연간 50만대 수소전기차 생산 체제를 구축하고 수소연료전지시스템 생산도 70만대 수준까지 늘린다는 목표 아래, 현대제철·현대글로비스 등을 통해 부생수소 양산체제와 수소 운송 플랫폼 구축에 들어갔다. 

 

현대차 청사진의 백미는 ‘인간을 중심에 둔 모빌리티 혁신’이다. 정 신임회장은 올해 'CEO 2020'와 수소 모빌리티+쇼를 통해 UAM(도심 항공 모빌리티)-PBV(목적 기반 모빌리티)-HUB(모빌리티 환승 거점)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미래 도시를 제시했다. 제품과 혁신기술을 결합해 사무·여가 등 탈 것 이상으로 진화된 모빌리티를 구현하고 이동의 자유를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1조8000억원을 들여 UAM 관련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2028년부터 본격적인 사업에 나설 예정이다.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정체성 강화

 

‘자동차 제조 기업’에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현대차 DNA를 바꿔놓으며 미래로의 추진력을 확보해 온 정 신임회장에 정 명예회장도 ‘승계 시점이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최근 회장직 사임의사를 밝히고, 정 신임회장에게 총수에 올라 코로나19와 미중 무역갈등 등으로 인한 엄중한 경제위기 속에서 미래 혁신을 주도해달라고 당부했다. 품질경영을 바탕으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새로운 ‘선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판단에서다. 

 

정 신임회장은 취임사에서 ‘안전하고 자유로운 이동과 평화로운 삶이라는 인류의 꿈을  함께 실현해 나가고, 그 결실들을 전 세계 모든 고객들과 나누면서 사랑받는 기업’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향후 혁신·개방의 속도가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IT기업보다 더 IT기업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던 만큼, 활발한 소통을 바탕으로 조직의 유연성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정 신임회장은 메신저·이메일 등 보고 간소화, 복장 자율화, 상시 채용, 승진연차 제도 폐지 등으로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을 해왔다. 

 

세대교체를 통한 인적 쇄신도 속도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우유철 그룹 부회장이 퇴임한 뒤 김용환·윤여철 그룹 부회장, 박한우 기아차 사장, 차인규 인재개발원장, 한성권 현대차 사장, 안건희 이노션 사장이 보직을 이동하거나 계열사로 자리를 옮겼다. 정 명예회장의 가신그룹이 경영 일선에서 멀어진 셈이다. 반면 하언태 현대차 국내생산담당 사장, 장재훈 제네시스 사업본부장(부사장), 이용우 이노션 사장 등 신진들의 도약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말 인사를 계기로 상무 승진자 평균 연령이 43.4세로 낮아지면서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쐈다. 올 연말에는 이같은 흐름이 강해질 것으로 여겨진다. 

 

국내외 전문가 영입을 통해 그룹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는 작업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BMW의 고성능차 개발총괄책임자인 알버트 비어만을 영입한 것을 비롯해 다임러트럭 전동화 부문 기술개발 총괄 출신 마틴 자일링어, 벤틀리 출신의 한국인 디자이너 이상엽 전무, 람보르기니 출신의 맨프레드 피츠제럴드, 벤틀리 출신의 루크 동커볼케, 삼성전자 출신의 지영조 전략기술본부장(사장), 미국 항공우주국(NASA) 출신 신재원 도심항공모빌리티(UAM)사업부장(부사장), KT 출신 5G(5세대 이동통신) 전문가 윤경림 오픈이노베이션전략사업부장(부사장), GM 출신 자율주행 기술 전문가 이진우 지능형안전기술센터장(상무) 등이 현대차에 둥지를 튼 상태다. AI, 자율주행, UAM, 커넥티드카 관련 전문가 영입이 더욱 광폭으로 이뤄진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인간 중심의 미래 모빌리티로의 전환이 속도를 올릴 것으로 점쳐진다. 전날 현대차는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 건립에 들어가 관련 연구 고도화에 돌입했다. HMGICS에서는 자동차 주문부터 생산, 시승, 인도, 서비스까지 자동차 생애주기 전반을 연구하고 실증하게 된다. 2026년으로 예정된 강남 글로벌비즈니스센터까지 완공되면 인간 중심의 모빌리티 기업으로 정체성이 더욱 선명해진 전망이다. 

 

새시대 열었지만 지배구조 개편 등 과제도

 

정 신임회장이 당면한 과제 또한 만만치 않다. 우선 코로나19로 인한 실적 충격을 회복하는 일이다. 현대·기아차는 SUV 위주의 신차출시, 수출 물량 조정을 통한 효율적 재고관리로 실적 방어에 성공했지만 안심할 수 없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될 경우, 소비 위축이 지속되고 생산공급망도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이후 가장 큰 시장인 중국에서의 부진도 지속되고 있다. 

 

품질경영도 더욱 다듬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차는 지난해 세타Ⅱ 엔진 문제로 곤혹을 치렀고 올해엔 전기차 주력모델인 코나EV 화재가 논란이 되면서 대규모 리콜을 단행했다. 화재 원인과 리콜 적정성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면서 내년부터 본격화될 전기차 출시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 밖에 중고차 진출, 강남 글로벌비즈니스센터 완공, 미래차 경쟁력 확보도 관건이다. 

 

무엇보다 마무리 짓지 못한 지배구조 개편은 시급하다. 현대차그룹은 ▲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 ▲기아차→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 ▲현대차→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현대차 ▲현대차→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 등 4개의 순환출자 고리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 3월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면서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로 단순화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현대모비스의 모듈·AS 사업부를 인적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고 현대모비스 존속법인을 그룹 지배회사로 두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정 신임회장의 지분율이 높은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팔아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해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순환출자 고리를 끊으려 했다. 그러나 현대모비스 보통주를 보유한 미국계 펀드 엘리엇이 현대글로비스로부터 충분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며 반대한 데 이어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을 비롯한 국내외 자문사들도 반대하면서 개편안은 무산됐다.

 

정 신임회장이 가진 현대차그룹 지분은 현대차 2.35%, 기아차 1.74%, 현대글로비스 23.29%, 현대위아 1.95%, 현대오토에버 9.57%에 불과하다.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현대모비스 지분은 올해 상반기 0.32%를 확보했을 뿐이다. 안정적인 그룹 지배력을 가져가기엔 부족하다.

 

정부여당은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추진을 서두르고 있어, 순환출자 해소와 지배력 강화를 신속히 처리해야만 한다. 재계에서는 지주사 체제로 전환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를 각각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한한 뒤 투자 부분을 합병하는 방식이다. 정 신임회장 등 오너일가는 현물출자를 통해 투자회사의 지분율을 높일 수 있고, 주식을 처분할 때까지 법인세와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부담도 덜하다. 수조원의 실탄을 확보하기 위해 비핵심 계열사 지분을 팔거나 현대엔지니어링 등 비상장 계열사를 상장시킬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현대카드·현대캐피탈·현대차투자증권 등 금융 계열사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 게 문제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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