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현대중공업이 선주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 30년 넘게 거래한 납품업체의 기술 자료를 제3의 업체에게 넘기는 등 불공정행위를 했다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았다.

 

공정위는 1일 하도급 업체의 기술자료를 유용한 현대중공업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2억4600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1일 밝혔다. 공정위가 적발한 위반은 ▲선박용 조명기구 기술자료 유용 ▲단가경쟁을 위한 기술자료 유용 ▲기술자료 요구 서면을 교부하지 않은 행위 등 3건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고객인 선주 P사의 특정 납품업체 지정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2017년 4월부터 2018년 4월까지 30년 이상 선박용 조명기구를 납품하고 있던 A사의 제작도면을 유용했다.

 

선박용 조명기구는 선박엔진의 진동, 외부 충격, 해수와 같은 혹독한 환경에 노출되기 때문에 일반 가정용 조명기구와 달리, 폭발을 방지하기 위한 구조와 높은 조도, 우수한 전기적 안정성이 요구된다. 현대중공업은 A사 제작도면을 P사가 지정한 B사에 전달해 선박용 조명기구를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현대중공업은 선주에 요청에 따르려다가 발생한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공정위는 하도급 업체의 기술자료를 유용한 행위는 법 위반 사항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고 봤다. 게다가 B사가 선박용 조명기구를 납품할 수 있게 되면서 부품 이원화, 경쟁관계 형성 등과 같은 효과가 발생해 단가가 7% 내려갔다. 현대중공업도 A·B사 두 곳으로 납품업체가 늘어나면 단가를 최대 5%까지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현대중공업은 낮은 견적가격으로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2016년 6월부터 2018년 5월까지 선박용 엔진 부품 5가지를 입찰하는 과정에서 기존 하도급 관계를 맺고 있는 업체 도면을 제3의 업체에 제공했다. 실제 입찰 결과, 기존 하도급 업체의 도면을 전달받은 제3의 업체가 일부 낙찰받아 제품을 납품했다.

 

이와 함께 현대중공업은 2015년 6월부터 2018년 1월까지 80개 하도급 업체에게 총 293개의 기술자료를 요구하면서 법정 서면을 교부하지 않은 사실도 획인됐다. 하도급법에 따르면 원사업자가 하도급업체에 기술자료를 요구할 경우 해당 이유와, 사용 후 폐기 계획 등을 규정한 법정 서면을 교부해야 하지만 현대중공업을 이를 생략했다. 현대중공업은 선주에게 제출할 목적으로 하도급 업체들에게 자료를 요구하고 이를 취합하여 전달한 것일 뿐이어서 실질적인 서면 교부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공정위는 위법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공정위는 이번 사건에 대해선 선주의 요구, 직원의 실수가 법 위반 행위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보고 고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지난 7월 공정위는 현대중공업의 또 다른 기술유용(엔진 부품 기술)을 적발했을 때에는 9억7000만원 과징금을 부과하고, 법인을 고발 조치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에도 현대건설기계와 함께 건설장비 부품 기술을 유용한 사실이 적발, 과징금 4억3100만원을 부과하고 고발했었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은 공정위가 직권인지를 통해 업계에 만연해 온 기술유용 관련 실무 행태에 대해 제재했고, 이를 통해 실무 관행을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하도급 업체의 기술자료를 보호하는 노력이 업계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내년 상반기까지 첨단 기술분야를 대상으로 기술유용 행위 감시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