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중심으로 회사별 자율경영체제 유지할 듯
코로나19 장기화로 실익 적어…계열 분리 대신 경영 안정화로
지배구조 핵심 삼성물산 지분 17.3% 보유…분쟁 가능성 낮아
“삼성을 전문경영인이 이끄는 집단지배체제로 만들어 가겠다”
4세 무승계 천명…발렌베리가문처럼 소유·경영 분리할 수도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시스)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한국 경제계의 큰 별이 잠들었다. 아시아 변방의 무명 기업 삼성을 세계 5위의 브랜드로 키워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영면했다.

 

이 회장의 별세로 공석이 된 삼성호의 선장은 이재용 부회장이 될 전망이다. 2014년부터 6년5개월 동안 삼성을 안정적으로 운영해왔던 만큼 이 부회장의 회장직 승계에는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단기적으로 체제 안정을 위해 정중동의 행보를 보이겠지만, 장기적으론 지배구조 개편이나 비주력사업의 정리 등이 이뤄질 공산이 크다. 

 

막 오른 이재용 체제…계열분리 가능성 낮아

 

1968년 6월 23일생인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장남으로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됐다. 경복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거쳐 게이오대 경영학 석사, 하버드대 경영학 박사를 수료했다. 

 

그가 삼성에 몸을 담은 것은 1991년 삼성전자 총무그룹에 입사하면서부터다. 1996년 삼성전자 기획팀, 1997년 미래전략그룹,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경영전략담당 상무를 거쳤고 2007년에는 전무로 승진한 뒤 2010년에 부사장으로 이듬해 사장으로 승진하며 후계구도를 굳혔다. 2012년 말 창립 이래 최대 실적을 거둔 성과를 인정받아 부회장에 오르며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 회장의 와병으로 삼성의 실질적 총수 역할을 하던 이 부회장은 이미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 지정을 통해 공식적인 총수 자리에 올랐다. 남은 것은 ‘회장’ 직함이다. 이 역시 조만간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다. 재계에서는 삼성그룹이 빠른 시일 내 회장 승격을 위한 절차와 시점을 검토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은 2017년 12월 국정농단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앞으로 삼성그룹에 회장의 타이틀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대내외에 삼성이 건재함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회장직을 이어받는 게 좋가는 게 재계의 지적이다. 이건희 회장도 1987년 이병철 창업주가 타계한 지 20여일 만에 회장에 올랐다. 

 

이 부회장이 회장에 올라선다 해도 큰 틀에서의 체제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은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전자계열사와 삼성물산을 포함한 비전자 계열사, 삼성생명 등 금율계열사 등 3개 소그룹 체제로 운영 중이다.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 등 그룹의 미래와 직결되는 굵직한 현안은 이 부회장이 결정하지만 계열사별 경영은 각 사의 최고경영자(CEO)에 맡기는 자율경영 형태다. 앞으로도 이 부회장은 핵심인 전자계열사와 그룹의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그 외 계열사는 사장단이 이끄는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2018년까지 제일모직(현 삼성물산 패션 부문) 사장을 맡았던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나 호텔·레저사업을 영위하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계열 분리를 통해 독립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당분간은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추측에 힘이 실린다. 삼성은 이병철 창업주 타계 이후 CJ, 신세계, 한솔그룹 등으로 계열 분리가 이뤄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지분구조상 쉽지 않은데다 계열분리에 따른 이득이 많이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호텔신라의 주요 주주는 국민연금(10.1%), 삼성생명(7.43%), 삼성전자(5.11%) 등이다. 이 사장은 호텔신라에 개인 지분이 없지만 삼성물산 지분 5.55%를 갖고 있다. 이 이사장은 삼성SDS 지분을 3.9%를 보유 중이다. 

 

이로 인해 이 부회장이 그룹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주식 맞교환을 할 가능성은 있다. 실제 롯데그룹의 경우, 고 신격호 명예회장의 지분 중 41.7%를 신동빈 회장이 물려받았고,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이 33.3%,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이 25%를 상속받았다. 신유미 전 호텔롯데 고문은 국내 지분만큼의 일본 유산을 받았다. 

 

삼성 역시 이 부회장에게 지분을 몰아주고 대신 호텔신라 등 계열사를 떼내 두 딸에게 맡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삼성물산 중심으로 지배구조 개편이 이뤄지고 있어 대주주 자격을 버리고 독립을 선택할 정도로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호텔·면세와 패션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호텔신라는 지난 1분기 창사 이래 처음으로 670억의 적자를 낸 데 이어 2분기에도 634억원의 손해를 봤다. 삼성물산 패션부분도 올 상반기 302억원의 손실을 기록하며 전자로 돌아섰다. 굳이 독립하기 보다는 경영 안정화와 브랜드 가치 제고에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 

 

상속 과정에서 빚어지는 경영권 다툼도 삼성에선 일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17.33%)로 올라선 상태다.

 

대외 불확실성 파고 높아…비주력 계열사 과감히 정리할 듯

 

이 부회장은 그룹 경영을 맡은 이후 그룹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데 주력해왔다. 화학·방위 산업 등 비주력 사업은 정리하고 시스템 반도체·5G(5세대 이동통신)·바이오·전장부품·AI(인공지능)에 과감히 투자하는 ‘선택과 집중’이 뚜렷해졌다. 이러한 기조는 더욱 가시화될 것으로 여겨진다. 

 

미중 무역갈등과 보호무역주의 확산, 일본 스가 내각의 우익적 성향, 코로나19 장기화, IT기술 경쟁 심화 등 대외 불확실성을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2개의 재판을 받게 된 이 부회장의 경영 공백도 변수다. 이에 따라 건설, 패션, 광고 등 매각설이 제기됐던 사업이 정리 수순에 들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당이 추진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은 이와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다. 개정안은 보험사가 보유한 자회사 주식과 채권 소유 합계액을 총 자산의 3% 미만으로 낮추고 보험사의 계열사 지분 보유액 평가방식을 기존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바꾸는 게 골자다.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총자산의 3%만 남겨두고 나머지를 매각해야 한다. 

 

현재 삼성은 이 부회장을 정점으로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지배구조를 이 부회장-삼성물산-삼성전자로 바꾸려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지분 약 4억주, 20조원대 중 대부분을 인수해야 한다. 게다가 덩치가 훨씬 큰 삼성전자의 지분 30%도 확보해야 한다. 여기에 소요되는 자금이 천문학적인 액수에 달하기 때문에 이 참에 삼성생명 등 금융계열사를 매각해 상속세를 해결하고 매각대금을 삼성물산에 재투자해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자금팀, 삼성운용과 삼성증권 사장을 역임한 바 있는 황영기 전 금융투자협회장은 2018년 한 기고문에서 “삼성이 금융 부문을 아예 포기하면 순환출자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되고, 보험 계약자의 돈을 지배력 강화나 산업 부문 지원에 쓰려 한다는 의혹을 일거에 불식시키는 장점이 있다”며 “삼성이 금융 부문까지 매각함으로써 지분율에 연연하지 않고 전문경영자 집단으로서 삼성전자를 계속 키워나가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내외에 밝히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겠다” 선언…장기적으론 발렌베리 방식 따를수도

 

다만, 장기적으론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준법경영을 약속하며 자녀에게 물려주기 않겠다고 공언한 만큼,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 개편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스웨덴 최대 기업집단인 발렌베리그룹을 롤모델 삼아 지배구조를 짤 가능성이 많다. 

 

1856년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SEB)을 창업한 뒤 160년간 5대째 가족 경영을 유지하고 있는 발렌베리 가문은 ‘소유하지만 지배하지 않는다’는 경영원칙을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 시가총액 40% 가량을 차지해, 국내 경제계에서의 비중이 높은 삼성이 롤모델로 삼고 있다. 

 

일렉트로룩스, 에릭슨, 스카니아 등 100여개 회사의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일임한다. 자회사들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지주회사 인베스터가 있고 이를 다시 재단이 소유하는 구조다. 자회사의 이익은 배당으로 지급되고 재단을 통해 사회에 환원된다. 남은 이익은 재단에 적립된다. 

 

후계자 선정도 까다롭다. 적합한 인물이 나올 때에만 경영권을 세습하는데, 후보자는 자신의 역량을 입증해야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명문대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해야 하고, 세계적 금융 중심지에서 실무 경험과 금융 흐름을 익혀야 한다. 더욱이 2명의 후보자를 10년 이상 평가해 적임자를 선별한다. 

 

이 부회장은 지난 5월 대국민사과를 통해 “삼성을 전문경영인이 이끄는 집단지배체제로 만들어 가겠다”며 “자녀에게 절대로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오너가는 핵심 인재 영입 등에 주력하고 경영은 계열사 최고경영자에 맡기겠다는 구상이다. 삼성전자가 2018년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을 분리한 데 이어 올해 처음으로 외부 인사인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의장직을 맡긴 것에도 이러한 구상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재단 지분을 통한 우회 상속을 하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한데다 현행법상 제약도 적지 않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공익재단은 지분율 5% 이상(성실공익법인은 최대 20%) 가질 수 없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역시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소속된 공익법인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더군다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기업을 키어온 오너경영이 주를 이루고 있어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기엔 이르다는 점은 문제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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