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에 재반박…배터리 영업기밀·특허 침해 놓고 잇따라 입장문 발표
LG “왜 우리 자료 갖고 있었나” 주장에 SK “훔쳐서 특허 출원할 바보 없어”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공방이 격화되는 모습이다. 두 회사는 주말도 잊은 채 입장문을 통해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 재반박하며 격앙된 감정을 드러냈다.
6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입장문을 통해 설전을 이어갔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소송을 벌이고 있는 두 회사는 지난 4일에도 배터리 영업비밀과 특허 침해를 놓고 “근거 없는 주장”(LG화학) “일방적 주장”(SK이노베이션)이라고 비난했다.
LG화학이 ‘그렇게 당당하면 우리 자료를 왜 갖고 있는지부터 소명하라’고 비아냥대자 SK이노베이션은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할 자신 없으면 분쟁을 멈추라’고 응수했다.
이날 오전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에 “소송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여론을 호도하지 말고 소송에 당당히 임하라’고 한 SK이노베이션의 4일 입장문에 불쾌감을 드러낸 LG화학은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LG화학은 “협상용 카드 운운하며 장외에서 여론을 오도한 경쟁사가 제재 요청 내용을 정확히 알리기 위한 정당한 활동을 오히려 비판하며 상호존중을 언급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면서 “영업비밀 소송에서 악의적인 증거인멸과 법정모독으로 패소판결을 받은데 이어 국내 소송에서도 패소로 억지주장이 입증됐는데 과연 SK이노베이션이 정정당당함을 언급할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억지주장을 누가 하고 있는지는 소송 결과가 말해줄 것이며 결과에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핵심기술 탈취로 소송이 시작된 직후부터 자신의 사익을 위해 국익을 운운하는 일은 이제 그만 멈추길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특히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의 994특허에 대한 선행기술을 이미 보유하고 있었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당사는 개발된 기술의 특허 등록을 할 때 핵심 기술로서의 요소를 갖추고 있는지 등 엄격한 기준을 고려한다“고 했다. A7 배터리 개발 당시 3면 2컵 실링 구조를 적용했지만, 당시 내부기준으로 특허로 등록해서 보호받을 만한 고도의 기술적 특징이 없고, 고객제품에 탑재돼 자연스럽게 공개되면 특허 분쟁 리스크도 없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라 특허로 등록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안타깝게도 당사는 경쟁사의 수준과 출원 특허의 질 등을 고려해 모니터링한다”고 비꼰 LG화학은 “특허소송이 제기된 후 LG화학은 곧바로 해당 특허가 크라이슬러에 납품한 자사의 A7배터리에 이미 적용된 선행기술임을 파악해 소송에 대응해 왔다”고 강조했다.
LG화학은 “특허 소송에 대한 주장도 장외 여론전이 아닌 정해진 법적 절차에 따라 양사가 충실하게 소명해 나갔으면 한다”라며 “떳떳한 독자기술이라면 SK이노베이션에서 발견된 LG화학의 관련 자료와 이를 인멸한 이유부터 소송 과정에서 명확히 밝히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SK이노베이션은 즉각 재반박했다. 이날 오후 입장문을 통해 “이미 출시된 경쟁사의 제품에 적용된 기술을, LG 표현에 따라 ‘훔쳐서’ 무효가 될 특허를 출원할 바보는 없다“고 격분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994특허 침해 관련 소송을 제기했을 때 LG화학이 그들이 가진 기술을 특허화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바로 A7이라는 제품을 내놓고 특허 무효를 주장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LG화학은 소송이 제기된 지 2개월이 지난 후 제출한 첫 번째 서면에서 100여개의 특허를 나열하며 선행기술이라 주장했지만, 거기에는 A7이라는 제품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제시한 문서들에 A7 제품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며 “소송상 필요한 방어전략상 뒤늦게 유사한 선행기술을 검색해 공격하는 방식은 이해할 수 있지만, SK가 남의 기술을 가져가 특허로 등록했다고 여론전을 펼치는 것은 억지주장과 의도적 왜곡을 넘어 거짓말에 가깝다”고 비난했다.
또 SK이노베이션은 “994 특허의 발명자가 LG에서 이직한 사람은 맞지만, LG화학이 관련 제품을 출시한 2013년보다 5년 전인 2008년 이직했다”며 “발명자가 이직했다는 사실과 특허 사이에는 아무 인과관계도 없음은 위 시간 순서만으로도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삭제된 후 복원됐다고 주장하는 파일에 대해서는 “원본은 애초에 삭제되지 않고 보존 중이고 시스템상의 임시 파일이 자동으로 삭제된 것뿐”이라며 “ITC의 명령으로 SK 내에서 LG측 전문가가 약 2개월 간 디지털 포렌식을 진행했지만, SK가 994 특허에 LG의 정보를 참조했거나, 그런 사실을 은폐했다는 아무런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LG화학은 “(LG화학의 주장은) 정직한 소송행위라기보다는 특허권자인 SK의 이미지를 깎아내려 소송과 소송 밖 협의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비신사적 행위”라며 “LG는 소송을 먼저 시작한 당사자로서 사실을 근거로 정해진 소송절차에 정정당당하게 임해 주시기 바란다. 제발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해주시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두 회사의 배터리 소송전은 지난해 4월 LG화학이 ITC에 ‘SK이노베이션이 자사 인력을 빼가고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9월 LG화학이 자사 배터리 기술 특허(특허번호 994)를 침해했다면서 ITC에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LG화학도 특허침해 소송으로 맞대응한 데 이어 ITC에 예비판결을 요청했다.
LG화학은 일단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지난 2월 ITC는 LG화학의 손을 들어주며 SK이노베이션에 조기 패소 결정을 내렸다. SK이노베이션이 국내 법원에 ‘미국에서 LG화학이 낸 소송을 취하해달라’고 낸 소송에서도 승소했다. 최근 LG화학은 ITC에 SK이노베이션의 특허가 자사 선행 기술을 활용했다며 추가 제재를 요청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ITC는 오는 10월 영업비밀 침해소송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린다. 판결이 내려지면 SK의 부품·소재 등에 미국 내 수입 금지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합의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다만 배상금 규모를 놓고 두 회사가 견해 차를 좁히지 못하고 협상이 사실상 중단된 것으로 알려진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