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구 일본대사관 인근 도보에 '보이콧 재팬'이란 문구가 적힌 스티커가 붙어있다. 2019.08.05

[스페셜경제=김수영 기자] 일본이 지난 2일 전략물자 수출 우대국가 명단(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하기로 결정하며 한일 갈등이 극에 달하는 가운데, 일본이 강제징용 배상판결 시 수출규제를 비롯한 경제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박근혜 정부 당시 이미 예측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는 당시 일본이 어떤 조치를 취할지 구체적 정황까지 어느 정도 파악해두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31일 SBS의 보도에 따르면 2013년 11월 박근혜 정부 당시 외교부가 작성한 내부 문건에는 강제징용 배상판결이 가져올 경제적 영향을 분석한 내용이 담겼다.

당시 외교부는 문건에서 법원의 배상판결이 확정될 경우 ‘일본이 청구권 협정 위반이라 주장하며 금융조치나 수입·수출 등 다양한 형태의 보복을 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에는 일본 기업들이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 한국 기업들을 상대로 핵심부품 공급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보복의 대상이 될 기업과 방식까지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같은 내용을 예측했던 박근혜 정부는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염려해 배상판결을 미루는 데만 급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이른바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이 검찰 수사 중 드러난 것이다.

이번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의 발단이 된 강제징용 배상판결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1997년 12월 ‘일본제철(당시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일본 오사카 지방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일본 최고재판소가 한일청구권협정(1965)에 의거해 개인에 대한 배상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1심을 확정하자, 피해자들은 2005년 2월 서울중앙지법에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은 일본 재판부 판단의 효력을 인정하고 사건을 기각했지만 2012년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이를 서울고법으로 파기 환송했다.

국내 재판에서의 쟁점 중 하나는 ‘신일철주금이 신일본제철을 승계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피해자들은 신일본제철의 전신인 일본제철의 공장에 강제 동원돼 노역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1심과 2심은 신일철주금이 옛 신일본제철을 승계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신일철주금이 신일본제철을 승계한 기업이라 판단했다.

이듬해 7월 서울고법은 신일철주금에 피해자 1인당 1억 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지만 신일철주금은 불복해 상고했고, 대법원은 이후 5년 간 선고를 미뤄왔다.

그러나 2015년 양승태 사법부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주오스트리아 대사에게 “외교부 관계자와 ‘징용 사건’ 관련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을 협의했다”며 “주오스트리아 대사관에 법관을 파견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자”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할 경우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고심 중이던 외교부 입장을 고려해주는 대가로 법관의 추가 대사관 파견을 요청한 것임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이 같은 정황은 정권이 교체된 2018년 검찰의 사법부 블랙리스트 수사과정에서 법원행정처가 재판거래를 하려 했다는 의혹이 발견되며 드러났다.

대법원은 2018년 10월30일 “피해자들이 ‘일본제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신일철주금’에도 행사할 수 있다”며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도 불구하고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사진 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수영 기자 brumaire25s@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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