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6일 미국 ITC 최종심‥자존심 대결로 번진 소송전
“대화의 문 열려있다”지만 유의미한 수준의 협상은 불발
극적 합의·ITC판결·트럼프 거부권 행사 등 가능성 다양
국내외 배터리·완성차 등에 미칠 파장 상당‥업계 ‘촉각’

 

[스페셜경제=최문정 기자]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여부를 둘러싸고 1년 6개월 넘게 긴 법정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심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ITC는 오는 26일(미국 현지시간) 배터리 소송의 결말을 내린다. 

K-배터리 신드롬을 이끌고 있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법정 공방은 지난해 4월 시작됐다. LG화학이 미국 ITC와 델라웨어 연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 침해 행위로 고소한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의 소송제기가 터무니없다며 바로 맞소송으로 응수했다. 이에 따라 양사는 크게 영업비밀 침해와 특허침해라는 2가지 주제로 1년 6개월 넘게 한국과 미국을 배경으로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코앞으로 다가온 양사의 ‘운명의 날’에 배터리 업계는 여러 가능성을 내놓으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최종심 이전 극적합의

첫 번째 가능성은 양사가 최종심을 약 3일 앞두고 극적인 합의에 성공하는 것이다. 사실상 결렬된 것으로 보였던 양사의 합의는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2020’ 행사에 지동섭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부문 대표의 발언으로 급격히 힘이 실렸다.

지 대표는 이날 행사장에서 기자들에게 “(이번 소송은) 두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배터리 산업에도 걸린 문제라고 생각한다. 빨리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통로를 열어두고 대화를 지속하려고 하고 있다”라고 발언했다.

배터리 사업을 이끄는 지대표의 이 같은 발언에 업계에서는 양사가 유의미한 수준의 협상 진전을 보였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내놨다. 그간 양사가 수위 높은 발언으로 서로를 비판하면서도 끝까지 합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점도 이와 같은 추측의 근거로 꼽혔다.

다만, 최종심 이전 협상 가능성은 현재로썬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양사는 모두 협상 내용의 진전이 있었냐는 질문에 “그런 것은 없다”, “금시초문”이라고 딱 잘라 답변했다. 다만, “기존과 같이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은 상황이다.

‘반전 없는’ LG화학 승소

두 번째 가능성은 반전 없이 LG화학의 승리로 끝나는 경우다. 실제로 LG화학은 지난 2월 ITC의 예비판결에서 SK이노베이션의 조기패소를 받아냈다. 지난 2010년 이후 예비판결까지 나온 ITC의 판결이 최종심에서 뒤집힌 전례가 없는 것을 고려하면 현재로써 가장 무난한 시나리오다.

이 경우, SK이노베이션은 입지가 상당히 좁아진다. ITC가 최종적으로 LG화학의 손을 들어줄 경우, SK이노베이션은 미국 내 영업활동이 전면 금지되기 때문이다. 이는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내 배터리 제품 생산은 물론이고, 수입도 금지되는 결과다.

결국 궁지에 몰린 SK이노베이션은 울며 겨자 먹기로 LG화학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경우, SK이노베이션이 공탁금을 내고 미국 행정부에 검토를 신청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공탁금을 내면 ITC의 수입금지 명령 효력을 60일간 연기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공탁금을 지불해 얻어낸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 LG화학과의 협상을 끝내야만 한다. 이 때도 협상이 결렬되면, 결국 미국연방법원의 길고 긴 소송전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소송 기간 동안 미국 내 영업활동 금지는 유효하다.

SK이노베이션의 ‘역전드라마’

다른 한 편으로는 지난 8개월 간 SK이노베이션의 여러 활동의 결과 ITC가 2월의 조기패소 판결을 뒤집고 수정(Remand)을 지시하는 경우의 수도 있다. 이는 사실상 SK이노베이션의 승소 판결이다.

ITC의 수정지시는 쉽게 말해 사건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판결이다. 이에 따라 양사의 소송전은 최소 6개월 이상 연장된다. 이 기간 동안 SK이노베이션은 미국 내에서 정상적인 사업 활동이 가능하다.

수정지시 판결은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 LG화학과 이어지는 소송전에 필요한 지구력을 확보하는 한편,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LG화학의 핵심 주장 자체에 대한 재검토를 의미해 기술을 무단으로 도용했다는 오명을 벗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다시 원점


마지막 가능성으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은 조지아 주의 특성상, 대통령이 직접 ITC 판결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 주에 대규모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1공장은 내후년 양산에 들어가고, 2공장은 최근 착공했다. 이에 따른 지역사회 고용 효과는 최소 2000명 규모다.


또한 지난 21일 인터배터리 행사에 참석한 지 SK이노베이션 대표는 “조지아 공장에 적극 투자할 준비가 돼 있다”며 추가 투자 가능성도 암시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배터리)사업이 잘되면 50억 달러까지 투자 확대하고 6000명 채용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언급하며 투자 가능성을 내비친 바 있다.

이렇듯 조지아주에 적극적인 투자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이 패소해 사업이 전면 무효화될 경우, 지역 경제에 미칠 영향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를 비롯한 정부와 협력사 등은 지난 5월 ITC에 미국 경제와 조지아주 경제에 SK이노베이션이 기여할 수 있는 바가 크다는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다만, 이와 관련해 LG화학 관계자는 “그것도 소송과 관련된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사실상 대통령의 거부권이 받아들여졌던 경우도 없고, 지난 2012년 삼성전자와 애플과의 소송처럼 (미국) 국내 기업의 이권이 얽힌 것도 아니다. 완전히 해외기업끼리의 소송인 경우라 그러한 일이 생길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이후 한 건도 없다.

 

스페셜경제 / 최문정 기자 muun09@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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