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에 대한 모든 반도체 공급 차단
업종별로 영향 ‘온도차’
삼성·SK하이닉스, 단기 매출 하락 불가피
장기적으론 대체 수요처 확보로 영향 미미
LGD·삼성디스플레이, 화웨이 비중 낮아 타격 적을 듯
삼성전기, 매출 비중 낮아 영향 제한적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중국 최대 IT기업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추가 제재가 15일부터 발효됐다.

 

앞으로 미국의 기술과 장비를 이용해 만든 반도체를 화웨이에 공급하기 위해서는 미국 정부로부터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미국의 기술과 장비를 이용하지 않는 반도체가 없는 만큼, 사실상 화웨이와의 거래를 원천 봉쇄한 것과 다름없다.

 

우리나라 주력 수출상품으로 경제를 이끌어 온 반도체나 구동칩을 붙여 만드는 디스플레이 모두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당장 3분기에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화웨이가 제재 발효를 앞두고 전세기까지 띄우며 재고 쓸어담기에 나선 까닭이다. 그러나 화웨이 재고 효과가 사라지는 4분기에는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줄어들 것이라는 업계의 관측이다.

 

다만 국내 기업들이 화웨이를 대체할 수요처 확보에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중국에 편중된 수출시장을 재편하고 수요처를 다각화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화웨이 반도체 공급 원천봉쇄

 

이날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세계 반도체 업체들은 이날부터 화웨이에 대한 공급을 중단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지난달 17일 이후 화웨이를 위한 신규 웨이퍼 투입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17(현지시간) 화웨이에 대한 추가 제재안을 발표했다. 미국의 기술이나 소프트웨어, 장비를 사용, 생산한 반도체를 화웨이에 공급하려면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게 제재안의 핵심이다. ‘화웨이가 설계한이라는 단서 조항을 빠지면서 1·2차 때보다 제재 수위가 한층 강화됐다.

 

반도체 제조·생산과정에서 미국 의존도는 매우 높다. 장비와 기술,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않는 기업이 거의 없을 정도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세계 반도체 장비 상위 3곳이 미국 업체다.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17.27%)와 램리서치(13.4%), KLA-텐코(5.19%)의 점유율을 합치면 전체 반도체 장비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실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램리서치, KLA의 장비를 사용 중이다. 시스템반도체 미세공정에서 중요한 EUV(극자외선) 장비도 이번 제재에 포함된다. 네덜란드 ASML이 미국업체 싸이머를 인수해 EUV 장비 광원 핵심기술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전세계 모든 반도체업체가 화웨이와 거래를 끊을 처지에 놓였다.

 

큰 손 화웨이 거래 중단시 연간 10조원 이상 매출 증발

 

문제는 국내 반도체의 대중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올 17월 국내 반도체 수출액 중 중국의 비중은 전체 41.1%에 이른다. 두 번째로 높은 국가는 홍콩으로 20.8%를 차지했다. 전체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의 비중이 무려 3분의 2에 육박하며 3366400만달러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더욱이 홍콩 수출 물량 중에는 홍콩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가는 물량이 포함되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수출량은 실제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화웨이는 국내 반도체업계의 큰 손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화웨이의 반도체 구매액은 208억달러(246800억원)로 애플(361억달러)과 삼성전자(334억달러)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반도체를 많이 구입했다. 이 가운데 국내 기업으로부터 사들인 부품은 13조원에 달한다.

 

국내 반도체의 두 축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화웨이를 주요 거래처로 두고 있다. 두 회사는 화웨이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D램과 이미지센서, 낸드 플래시 메모리, 디스플레이구동칩(DDI) 등을 납품하고 있다. 유진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삼성전자의 화웨이 매출 비중은 3.2%, SK하이닉스의 비중은 11.4%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매출로 추산하면, 삼성전자는 73700억원, SK하이닉스는 약 3조원이 화웨이로부터 나온다. 화웨이 제재가 지속된다면 연간 10조원에 달하는 매출이 증발하는 셈이다.

 

대체 수요처 많아국내 반도체, 정가적으론 타격 없을 듯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플랜B를 가동한 상태다. 대체 수요처를 물색하는 한편, 미국 정부에 미국 마이크론과 대만 미디어텍 등 세계 반도체 기업들과 함께 화웨이에 대한 거래 승인을 요청해놓았다. 다만 미국 정부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자국 업체의 불이익도 감수하면서까지 화웨이의 숨통까지 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거듭 드러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승인이 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단기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매출 하락을 불가피해 보인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으로 반도체 사업을 다각화한 삼성전자와 달리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가 주력인 SK하이닉스의 부담은 조금 더 클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반도체 수출처 다각화를 통해 화웨이 제재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재를 받지 않는 중국 기업들이 화웨이의 빈 자리를 대체하면서 자연스럽게 반도체 수요가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중국 시장에서 애플과 삼성전자가 화웨이 플래그십 모델을, 비보, 오포, 샤오미 등 자국 브랜드가 중저가와 하이엔드 모델을 대체할 수 있다해외에서 샤오미, 오포, 비보, 삼성, 애플, LG전자 등이 모두 수혜를 보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실제 오포는 하반기 생산량 목표치를 상반기보다 2배 늘렸다.

 

반도체 업계에서도 화웨이 제재의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상근이사(상무)샤오미나 오포, 비포와 같은 중국기업들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를 쓰기 때문에 화웨이의 물량을 상쇄할 것이라며 반도체 수요는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발목잡힌 중국의 반도체 굴기, 전화위복 될 수도

 

일각에서는 이번 제재가 국내 반도체 업계에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무산될 위기에 처해서다. 중국 정부는 1조위안(170조원)을 투자해 2025년까지 반도체 기술 자급률 70%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SMIC를 비롯한 중국 반도체 기업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화웨이로의 반도체 공급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SMIC로 제재를 확대할 태세다. 이럴 경우, SMIC는 반도체 생산이 불가능해진다.

 

김경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SMIC와 파운드리 업종 내에서 경쟁하는 한국 파운드리 업체가 수혜를 입을 것이라며 중국 외 지역에 생산라인을 보유했다는 점, 100K(10만장) 이상의 안정적 생산능력을 보유했다는 점에서 SMIC의 대체재로 주목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도 “SMIC가 미국의 제재 대상에 추가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업체의 반사이익이 기대된다면서 내년 말 7나노 공정을 준비 중인 SMIC 기술개발에 차질이 불가피해 7냐노 대규모 생산능력을 확보한 삼성전자의 수혜가 기대되며, SK하이닉스가 지분 100%를 보유한 SK하이닉스시스템IC가 올 4분기부터 중국 우시공장에서 파운드리 라인의 본격 가동이 전망돼 반사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디스플레이도 영향 미미부품업계는 관망

 

한편, 화웨이가 세계 2위의 스마트폰 제조업체라는 점에서 패널에 구동칩을 붙여 만드는 디스플레이 업체들이나 스마트폰 부품업체들도 이번 제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단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화웨이에 스마트폰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일부 공급하고 있다. 화웨이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삼성디스플레이가 8%(25000억원), LG디스플레이가 1%(2350억원)로 추산된다. 화웨이가 스마트폰용 OLED 물량 대부분을 자국 업체인 중국 BOE로부터 공급받고 있어 국내 기업의 비중이 크지 않다. 공급이 중단돼도 타격이 크지 않을 전망이다.

 

스마트폰 부품업체는 미미한 매출 하락이 예상된다. 삼성전기는 MLCC(적층세라믹콘덴서)를 화웨이에 공급 중이다. 화웨이가 스마트폰을 만들지 못하면 판매도 줄어들게 된다. 매출 중 화웨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1% 정도로 알려져있다.

 

아직 변수는 남아있다. 미국 정부의 제재가 확대될 가능성이다. 지난해 5월 이후 제재의 수위를 높여왔던 점을 감안하면 다른 전자 부품이나 중국 기업으로 범위가 넓어질 수도 있다. 게다가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에도 미·증 무역분쟁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민주당의 바이든 후보도 대중 강경책을 취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국내 업계에 미칠 불확실성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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