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 전 의원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당 현안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비공개 회동을 마친 후 회의실을 나서고 있다. 2020.01.27. (사진=뉴시스)


[스페셜경제=김수영 기자] “설 연휴가 끝나기 전 만나고 싶다” 안철수 전 의원이 최근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에게 전한 말이다.

“시간을 정해주시면 당대표실로 찾아뵙겠다”는 그의 말에 손 대표는 “(기자들이 찾아와)깊이 있는 대화가 어려울텐데 괜찮겠느냐”고 물었지만 안 전 의원은 “대표님을 찾아뵙는데 당대표실로 가는 것이 맞겠다”고 했다고 한다.

지난 27일 두 사람의 회동은 이렇게 이뤄졌고, 사실상 사퇴요구 또한 이렇게 이뤄졌다.

안 전 의원은 비공개 회동에서 손 대표에게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릴 것을 제안했고, 비대위원장에 자신을 임명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손 대표는 안 전 의원이 기자들과 카메라를 몰고 와서 공개적으로 사퇴 압박을 가했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28일 손 대표의 기자회견 발언에 따르면 당대표실로 와서 만난다는 것이 당대표에 대한 정치적 예우 차원으로 알았지 공개적으로 사퇴를 통보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당시 손 대표는 안 전 의원이 ‘회사 오너가 CEO를 해고통보 하듯 최후통첩을 했다’고 표현했다.

다시 하루가 지난 29일 바른미래당 공동 창업주였던 안 전 의원은 탈당을 선언했다.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연 안 전 의원은 “저는 오늘 비통한 마음으로 바른미래당을 떠난다. 어제 손 대표의 기자회견을 보며 바른미래당 재건의 꿈을 접었다”고 밝혔다.



‘타협·절충’에 손학규는 없었다


손 대표가 비대위원장 임명 등의 제안을 거절한 이후 안 전 의원은 손 대표 측과 어떤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 스페셜경제가 복수의 바른미래당 손 대표 및 안 전 의원 측 관계자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안 전 의원은 손 대표의 발언을 확인한 뒤 누구와의 상의 없이 스스로 입장을 정했다고 알려왔다.

안 전 의원이 줄곧 강조하던 바는 ‘타협과 절충을 위한 실용 중도정치’였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거대 양당의 횡포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묻혀간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의당을 창당하며 20대 총선에서 3지대 돌풍을 일으켰고, 이는 곧 현실로 나타났다. 중진급 정치 거물들을 뒤로하고 안철수라는 정치 신인을 간판으로 내세운 국민의당은 83석을 얻어내며 국회에 입성했다. 국회에 세 번째 자체교섭단체가 등장한 것은 15대 국회 이후 16년 만이다.

29일 바른미래당 탈당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에서도 안 전 의원은 이를 재차 강조했다.

“기성정당의 틀과 관성으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자기편만 챙기는 진영정치를 제대로 일하는 실용정치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타협과 절충의 정치가 실현되고 민생과 국가미래전략이 정치의 중심의제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안 전 의원이 손 대표 측과 어떤 물밑접촉도 없이 공개발언만으로 이별을 고한 것은 정치 지도자들 특유의 고집에서 비롯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 안철수 바른미래당 전 의원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2020.01.29. (사진=뉴시스)

 

 

고집이 빚어낸 분열의 역사…오해로 끝나나


지난 3일 새로운보수당이 버젓이 당내에서 신당을 창당해 나가기 전까지 바른미래당은 창당(합당) 전부터 줄곧 분열의 역사를 새로 써왔다.

과거 국민의당이 바른정당과 통합하는 과정에서 이에 반발하는 민주평화당이 떨어져 나갔고, 바른미래당으로 합당한 뒤에도 당초 걷는 길이 달랐던 구 새누리당 탈당파(바른정당계·현 새보수당)들과 국민의당계는 끊임없는 갈등을 빚었다.

두 계파가 결정적으로 돌아서게 된 계기는 지난해 4·3보궐선거 직후다. 선거 참패의 책임을 물어 바른정당계는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했고, 원내대표까지 가세한 당무 보이콧을 강행해왔다. ‘지도부 총사퇴’는 어느새 ‘손학규 사퇴’로 변해있었다.

제3지대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버티던 손 대표는 지난해 12월 ‘안철수가 돌아오면 전권을 넘기겠다’며 복귀를 촉구했지만, 분당을 막아내진 못했다. 이른바 유승민계로 분류되는 바른정당 출신 인사들은 바른미래당 당적을 지닌 채로 새보수당 창당 준비를 모두 마치고 지난 3일 집단 탈당했다. 이로 인해 (형식적으로나마) 28석을 차지하고 있던 바른미래당은 순식간에 20석으로 쪼그라들었다. 이 중 열외인 박주현·박선숙·이상돈·장정숙 의원 등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는 16명인 셈이다.

이런 분열에는 세 정치인의 고집이 한몫 했다. 유승민 의원은 정치권에서 내로라하는 고집 센 성격으로 꼽힌다. 이와 함께 손학규 대표도 회자되며, 20대 국회 직전부터는 안철수라는 이름도 고집쟁이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자기주장이 강한 세 정치인이 한 당(바른미래당)에 사실상 지도부급으로 모여 있는 것은 불화를 잉태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오랜 기간 동고동락한 사이도 아닐뿐더러 손 대표는 한때 민주당계에 몸담았고, 유 의원은 한국당계였던 만큼 두 사람의 결별은 한편으로는 필연이다.

손 대표가 유승민계의 사퇴 요구를 일축하며 줄곧 3지대 수립을 강조하고, 수적 열세에 있는 유 의원이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거듭된 러브콜에도 ‘탄핵의 강’ 등 조건을 내세운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원칙에 대한 고집’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계로 정치행보를 시작했지만 중도보수로 노선을 변경한 안 전 의원은 둘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인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2018년 서울시장 선거 패배 후 홀연히 독일 유학길에 오르며 메꿔지지 않은 그의 빈자리는 곧 손 대표와 유 의원의 알력으로 나타난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지난 19일 안 전 의원이 귀국하며 본격적인 정계복귀를 알린 것은 혼란스러운 당내 상황과 입지를 재건하고 다시 한 번 제3지대 구성을 꿈꿀 수 있는, 손 대표에게 있어서는 한 줄기 희망이었다. 그가 안 전 의원의 복귀를 두 팔 벌려가며 환영의 뜻을 표한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그러나 손 대표가 안 전 의원의 제안을 “유승민계가 요구하던 것과 같다”며 거절하고, 안 전 의원 또한 손 대표의 발언을 “이해할 수 없다”며 독자노선을 선택한 것은 결국 누가 재건의 중심에 설 것이냐는 신경전의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바른미래당의 한 관계자는 스페셜경제와의 통화에서 “안 전 의원이 성급하게 행동한 면도 있지만 당권파 의원들도 사퇴 목소리를 내는데 계속 버티기만 하는 손 대표에게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결국 알력다툼이라 본다. 중요한건 당을 수습하고 재건하는건데 이러고 갈라서면 누가 웃겠나. 황교안 대표만 좋아할 것”이라 지적했다.


다만 이같은 신경전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도 있다. 이는 지난해 4월부터 끊임없이 유승민계와 갈등을 빚어온 손 대표가 안 전 의원의 제안을 “과거 유승민계나 안 전 대표 측근들이 했던 얘기와 다른 부분이 전혀 없었다”고 평가하고, 안 전 의원이 이에 대해 “초심으로 돌아가 당원 뜻을 묻자는 제안에 왜 회피하시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답한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이 관계자는 “손 대표가 바른정당과 다투면서 좀 예민하게 반응하신 것 같다. 안 전 의원이 그렇게 경우 없는 사람은 아니다”라면서도 “안 전 의원도 해외에 있느라 당시 상황(당권파-비당권파 갈등)을 잘 몰라 서로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안 전 의원이 너무 성급하지 않았나 한다”고도 했다.

 

손학규 대표는 안 전 의원의 탈당에 대해 “소중한 정치적 자산이었던 안 전 대표가 탈당하게 된 것에 대해 당대표로서 아쉬움과 유감을 표한다”면서도 “다만 대화와 타협 없는 정치는 고립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자신의 요구사항만 얘기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나가겠다는 태도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안철수, 신당 창당?…혁통위 참여 가능성도

안 전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탈당의사를 밝혔을 뿐, 어떤 방식으로 독자노선을 걸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은 신당 창당이지만, 일각에서는 혁신통합추진위원회(혁통위)로의 합류할 가능성도 내다보고 있다.

한 안철수계 관계자는 “보수통합을 주장하는 분들이 옆에 있기 때문에 아마 보수통합 내지 그와 유사한 뭔가를 하지 않을까 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안 전 의원은 중도실용정치를 표방하지만 일부 안철수계 의원들은 ‘변혁(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에 있던 분들이고, 선거연대를 위한 보수통합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며 “안 전 의원의 발언은 신뢰하지만 함께하는 분들이 눈앞에 있는 이상 신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전했다.

변혁은 기존 손학규 대표의 퇴진을 요구한 비(非)당권파 모임으로, 현 새보수당 의원들과 안철수계 의원 7명 등으로 구성됐다. 새보수당이 공식 창당되며 안철수계 의원들은 바른미래당에 남은 상태다.

앞서 박형준 혁통위원장은 “통합의 완성은 안 전 의원의 합류”라고 밝힌데 이어 29일에는 안철수계 인사들과 오찬을 갖고 한국당-새보수당으로 대표되는 ‘범보수 통합’ 논의를 ‘범중도·보수 통합’ 논의로 끌어올리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편 안 전 의원이 공식적으로 탈당하며 소위 안철수계 인사들의 행보 역시 주목된다. 특히 안철수계 의원 중 권은희 의원을 제외한 김삼화·김수민·김중로·신용현·이동섭·이태규 의원 등 6명은 모두 비례대표 의원인 관계로, 출당조치 없이 탈당할 경우 자동으로 의원직을 상실한다.

바른미래당 당헌에 따르면 소속 국회의원 제명은 의원총회에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요구한다.

안철수계 의원들은 안 전 의원과 행보를 함께 하려 하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당권파 의원들은 보내줄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손학규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통화에서 “당권파 의원들은 전혀 생각이 없다”며 “제명해줄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현재로서는 안철수계 의원들이 혁통위에 참여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조심스레 제기된다. 한 안철수계 의원실 관계자는 “변혁에 계시던 의원님들이 함께 통합 필요성을 말해왔기 때문에 혁통위로 갈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말 그대로 선거연대를 위한 통합이란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안 전 의원은 거듭 정치공학적 통합 가능성에 대해 거듭 일축해왔다. 다만 현실적으로 총선이 3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는 점과, 측근 인사들이 끝내 혁통위행을 고집할 경우 안 전 의원의 선택지도 변경될 수 있는 가능성은 남아 있다.

 

스페셜경제 / 김수영 기자 brumaire25s@speconomy.com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