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사 체제 시 4.8조 투입…“이중지출 줄일 방법”
한진가 갑질경영 족쇄 채웠다…산은 영향력 커져

▲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산은은 지난 16일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추진에 8000억원을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산은이 대한항공 모회사인 한진칼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자금을 투입하면, 대한항공이 이 자금을 바탕으로 총 1조8000억원을 투입해 아시아나항공의 최대주주가 되는 방식이다. (사진제공=뉴시스)

 

[스페셜경제=윤성균 기자]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코로나19로 위기를 겪고 항공업계 재편을 위해 양대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통합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HDC현대산업개발과의 인수합병이 최종 무산된 지 불과 2개월 만에 나온 결론이다. 재벌 특혜 우려에도 불구하고 산업은행이 양대 항공사 합병을 선택한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산은은 지난 16일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추진에 8000억원을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산은이 대한항공 모회사인 한진칼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자금을 투입하면, 대한항공이 이 자금을 바탕으로 총 1조8000억원을 투입해 아시아나항공의 최대주주가 되는 방식이다.

당초 아시아나항공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현산과의 인수합병이 최종 무산된 이후 아시아나항공에 기간산업안정기금을 투입해 경영정상화 방안을 실행한 뒤 재매각에 나설 방침이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지난 9월 진행된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아시아나항공 관련 조만간 외부 컨설팅을 실시하고 최대한 빠른 시일내 정상화하고 추후 가능한 시점에 통매각이나 자회사 분리매각에 나서겠다”고 말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산은이 아시아나 재매각 방침을 결정하고 불과 2개월 만에 대한항공과의 통합 추진이 결정됐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정상화 방안이 나오기도 전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빠른 시점이다.

빅딜 서두른 산은
산은은 현산과의 노딜이 확정된 지난 9월 11일 직후부터 재매각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진 그룹 외에도 타 그룹사 6곳과 접촉했지만, 항공업계가 코로나19로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선뜻 나서는 곳은 없었다. 항공산업 부흥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곳은 대한항공을 보유한 한진그룹이 유일했다.

산은 입장에서는 국가 기간산업인 항공업에 대한 지원이 절실한 상황에서 양대 항공사가 합병하는 쪽이 이중 지출을 줄일 방법이라는 계산도 깔렸다.

산은은 아시아나 매각을 전제로 3조3000억원의 유동성을 지원한 데 이어 2조4000억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아시아나에 투입했다. 아시아나의 올해 상반기 기준 부채비율은 여전히 2291%로 추가적인 정책자금 투입이 불가피하다.

대한항공도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4월 산은과 수출입은행을 통해 1조2000억원을 긴급 수혈 받았다. 기간산업안정기금 신청도 일찌감치 예고된 상황이다.

때문에 양사를 합병할 경우 공적자금 투입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제로 최대현 산은 부행장은 지난 16일 진행된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양사 체제 시에는 내년 말까지 양사에 4조8000억원의 정책자금 추가 투입이 불가피하다”며 “채무 탕감 등으로 채권단이 막대한 손실도 예상됐다”고 설명했다.

산은이 연내 거래를 마무리하려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최 부행장은 “조속히 시행해야 연말 아시아나항공 자본확충 및 유동성을 해결할 수 있다”며 “대한항공 대규모 유상증자를 내년 초 시행할 수 있어 정책자금 투입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이후 찾아올 국내 산업 재편을 위해 현 시점에서 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재벌 특혜 아닌 영향력 강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 추진 발표 이후 시민단체과 정치권을 중심으로 재벌 특혜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이번 통합을 계기로 항공업에 대한 산업은행의 영향력은 오히려 커질 전망이다.

산은과 한진칼이 맺은 투자합의서에서 사외이사 선임 등 막강한 견제장치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산은과 한진칼은 투자합의서를 체결하면서 7대 의무 조항을 내걸었다.

한진칼은 산은에 대해 ▲산업은행이 지명하는 사외이사 3인 및 감사위원회위원 등 선임 ▲주요경영사항에 대한 사전협의권 및 동의권 준수 ▲윤리경영위원회 설치 및 운영 책임 ▲경영평가위원회가 대한항공에 경영평가를 실시할 수 있도록 협조하고 감독할 책임 등을 약속했다.

의무 조항을 어길 시 총 5000억원의 위약금과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도 명시됐다.

업계에서는 산은이 10% 남짓의 지분으로 사외이사 3명을 이사회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강력한 견제수단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들 사외이사는 한진칼 이사회에서 건전경영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이 물론 심각한 상황이지만 대한항공이라고 코로나19 국면이 유지되면 정상적인 회사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라며 “표면적으로 10% 지분에 불과해 보이지만 현 경영진은 할 수 있는 게 마땅히 없어 산은이 주도적인 경영을 해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걸 산은 회장도 이번 통합 추진이 재벌 특혜가 아닌 항공업계 재편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선택임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이번 통합작업은 조속한 고용안정과 국가 기간산업인 항공산업의 조기 정상화를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국내 항공산업의 국제경쟁력 확보에도 이바지하는 등 국민 경제적 측면의 긍정 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영평가위원회, 윤리경영위원회 등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통해 한진그룹은 책임경영을, 산업은행은 건전경영 감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스페셜경제 / 윤성균 기자 friendtolife@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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