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연 ‘한계기업 동향’ 보고서
한계기업 증가율 20개국 중 2위
신용등급 하락 속 줄도산 위기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상시화 필요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전부터 우리나라 부실기업이 빠르게 증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체 상장기업 중 돈을 벌어도 이자를 못내는 한계기업비중 증가율이 세계 주요국 중에서 가장 높은 만큼, 코로나19에 따른 타격이 더욱 클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9한계기업 동향과 기업구조조정 제도에 대한 시사점보고서를 통해 국내 부실기업과 구조조정 기업들의 증가폭은 앞으로도 더 커질 것이라며 기업구조조정 촉진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외부 감사를 받은 비금융기업 2764곳 가운데 한계기업이 지난해 3011곳으로, 2018(2556)보다 17.8% 늘어났다. 한계기업에 고용된 종업원도 2018218000명에서 지난해에는 266000명으로 22.0% 증가했다. 한계기업 소속 종업원 수는 2016년에 정점을 찍은 후 감소세를 보이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며 최근 5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용안정성에 대한 위험이 증가한 것이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 한계기업이 2018341곳에서 지난해 413곳으로, 21.1%(72) 늘었다. 이들 기업의 종업원 수는 같은 기간 114000명에서 147000명으로 29.4% 증가했다. 중소기업 중 한계기업은 2213곳에서 2596곳으로 17.3% 증가했고, 종업원 수는 14.1% 늘었다.

 

특히 상장기업으로 좁혀보면 한계기업 증가세는 세계 주요 20개국에서도 높은 수준이다. 전체상장사 수가 30개 미만인 국가와 조세회피처를 제외한 주요 20개국 거래소 상장기업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상장기업 699곳 중 한계기업 수는 201874곳에서 지난해 90곳으로 늘며 전년 대비 21.6%가 증가했다. 이는 일본(33.3%)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전체 상장기업 중 한계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810.6%에서 지난해 12.9%2.3% 증가해 20개국 중 증가폭이 가장 컸다. 국가별 상장기업 내 한계기업 비중은 주요국 대비 낮은 편이지만 최근 한계기업 수의 증가속도는 매우 가파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재무구조 악화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가운데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더 큰 타격이 우려된다는 게 보고서의 분석이다.

 

실제 신용평가사의 상반기 정기평가가 마무리되면서 국내 주요 대기업들 마저도 신용등급 강등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항공사들은 파산 직전의 절체절명의 상황으로까지 내몰리고 있다.

 

실제 세계 각 국 기업은 코로나19로 인한 일자리 감소, 소비심리 위축, 글로벌 교역 감소 등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독일 알리안츠는 전세계 파산 기업이 지난해 대비 20%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를 반증하듯 파산신청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5월 미국에서는 의류브랜드 제이크루, 백화점체인 니먼 마커스와 JC페니, 렌터카 업체 허츠가 파산을 신청했다. 일본에서도 패션업체 레나운(517)이 파산했다. 일본 데이코쿠 데이터뱅크는 올해 일본의 기업파산건수가 1만건을 상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프랑스 또한 가구 및 장식품 체인 알리네아가 마르세이유 상업법원에 지불정지를 신청한 데 이어 남성 기성복그룹 셀리오와 고급 식품점 포숑은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등 파산과 법정관리 신청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7일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부정적 등급전망 및 하향 검토대상이 된 기업 수는 모두 57곳이다. 긍정적 전망이 부여된 기업이 11곳인 것을 고려하면 하반기에는 등급을 내리는 기업의 수가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은 실적 저하 가능성, 재무안정성 저하 가능성 등을 반영해 부정적전망이 부여됐다. 영화 관람객과 외국인 입국객이 급감해 사업과 재무안정성에 부정적 영향을 받은 CJ CGV, 롯데컬처웍스, 파라다이스, 파라다이스글로벌의 신용등급 및 등급전망이 하향조정됐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재무 구조가 악화된 기업이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기업 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을 개선해 상시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외환위기 이후인 2001년 한시법으로 도입된 기촉법은 채권단 100%가 찬성해야 구조조정이 가능한 자율협약과 달리 75%만 찬성해도 구조조정을 가능하게 해 법정관리보다 신속하게 기업을 회생시킬 수 있다. 그러나 위헌 논란, 관치 금융, 실효성 문제 등이 제기되면서 현재 제6차 기촉법에 이르기까지 상시화가 되지 못한 채 기업과 채권금융기관의 필요로 인해 일몰연장과 일몰 후 재도입 등이 지속돼 왔다.

 

김윤경 한경연 연구위원은 기업의 재무상황, 사업기회 등의 차이를 반영한 다양한 구조조정 수단이 마련돼야 한다기업 구조조정이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에 대한 인식과 함께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한 적극적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보고서는 일본의 사업재생 ADR이 활용하는 제3의 중립적 전문가 위원회 방식을 통해 정책당국의 영향을 배제할 수 있으며, 기업 경영자의 워크아웃을 활용할 인센티브로써 회생절차 내 도입된 DIP제도(Debtor in Possession)를 통해 활용도를 높이고 이후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 발생을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을 함께 마련해 구조조정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제시했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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