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래 회장 주식매각으로 조현범 사장 최대주주로
“형제경영 변함없다”지만 형제 간 갈등 점화될 수도

▲경기도 판교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사옥.전경(사진 제공+한국테크놀로지그룹)
[스페셜경제=변윤재·홍찬영 기자] 한국테크놀로지그룹(옛 한국타이어그룹)이 갈림길에 섰다경영권 승계를 놓고 롯데처럼 잡음에 시달리느냐 동원처럼 조용히 마무리 짓느냐를 놓고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조양래 회장이 지난달 26일 블록딜 형태로 자신이 보유한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보통주 21942693(23.59%)를 차남 조현범 사장에게 매각했다고 같은달 30일 공시했다. 이로써 조현범 사장은 형인 조현식 부회장(19.32%)보다 2배 이상 많은 지분을 확보하며 단숨에 그룹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그룹 지주사로,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한국아트라스비엑스, 한국네트웍스, 한국카앤라이프 등 주력 계열사를 두고 있다. 효성그룹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의 차남인 조양래 회장이 지난 1986년 계열 분리하면서 설립됐다. 여러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지만 타이어 사업을 제외하면 동등한 위치에 있는 사업이 없기 때문에 최대주주의 지분을 넘겨받는 사람이 사실상 그룹 전권을 거머쥐게 된다.

 

재계에서는 조현범 사장으로 후계구도가 굳어졌다는 분석과 함께 형제 간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형제경영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형제의 난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조현범 후계구도 굳히기변수는 2심 재판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지난해 3월 조양래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차남 조현범 사장은 핵심 자회사인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를, 장남 조현식 부회장은 지주사인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을 이끄는 형제경영을 해왔다. 이번에 조 회장이 주식매매를 단행함에 따라 조 사장에게로 후계구도가 기울었다는 분석이다.

 

조현범 사장의 기존 지분은 19.32%, 이번 주식매매를 통해 42.9%를 보유하게 됐다. 형인 조현식 부회장(19.32%)과 누나 조희원씨(10.82%)의 지분을 합해도 조현범 사장에 크게 못 미친다. 그룹 경영권을 두고 표 대결을 벌인다면, 7.74%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의 지지를 끌어내고 지분을 추가로 매입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공적자금을 경영권 다툼이라는 흙탕물 싸움에 사용한다는 비난을 감수할 가능성은 낮다.

 

다만 조현범 사장의 재판 결과는 변수다. 그는 거래관계 유지를 대가로 협력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구속됐다가, 4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현재 검찰의 항고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5억원 이상의 횡령·배임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경영진은 회사 복귀가 불가능하다. 국민연금이 도덕성을 이유로 조현범 사장을 반대하고 나설 가능성이 생긴다. 이에 따라 조현범 사장에게 주식을 몰아준 것은 재판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만약의 경우, 조현범 승계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실적 악화에 사명 논란단독경영 유리판단한 듯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최근 연이은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주력계열사인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의 영업이익은 201611000억원에서 20177900억원, 20187000억원, 20195400억원으로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실적 개선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1분기 영업이익은 105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4.7% 하락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국내외 주요 완성차 업체 가동률도 낮아지면서 2분기 실적도 좋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미국 상무부가 한국산 타이어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착수, 수출 여건도 여의치 않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명칭을 놓고 잡음이 일고 있다. 코스닥 상장사 한국테크놀로지가 낸 상호사용금지 가처분신청과 관련, 서울중앙지법은 한국테크놀로지의 손을 들어줬다. 최악의 경우 한국테놀로지그룹이 진행해 온 글로벌 브랜드 마케팅 전략을 수정해야 할 수도 있다.

 

형제경영이 신속한 의사결정과 공격적 경영에 유리하진 않다는 점과 함께 조현범 사장이 신사업 추진과 공격적 인수합병(M&A)를 추진해 온 점 등을 고려해 조현범 사장이 그룹의 미래성장 동력을 이어갈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신경전 롯데냐 조용한 동원이냐잡음 없는 승계 여부에 관심

 

조현범 사장은 사실상 수년 전부터 그룹 경영을 사실상 총괄해온 만큼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형제경영은 유지될 것이라며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룹 관계자는 경영구도나 내부 직책 변화는 없다. 누나인 조희원씨 역시 이번 최대주주 변경에 대해서 중립입장을 밝혔다공시가 된 부분 이외에는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재계 일각에서는 후계구도가 안착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불거질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조현범 사장의 보유 지분이 다른 형제들의 지분(30.97%)에 국민연금, 기관투자 합한 지분과 격차가 벌어지는 까닭에 한진그룹처럼 표 대결이 벌어질 가능성이 낮다. 한진그룹 경영권은 장남인 조원태 회장에게 승계됐지만, 누나인 조현아 전 부사장이 사모펀드 KCGI, 반도건설 등과 손잡고 조원태 회장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원태 회장이 사내이사 연임에 성공하면서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최근 3자 연합이 지분을 늘리는 등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재점화되는 모양새다.

 

이에 롯데그룹처럼 형재 간 신경전 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롯데그룹의 고() 신격호 명예회장은 2015년 신동빈 회장을 후계자로 낙점했다. 신 회장은 일본 롯데의 지주회사인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로 선임되며 한·일 롯데그룹을 총괄하는 원톱이 됐다. 동시에 형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은 일본 롯데그룹 계열사 내 등기임원 및 부회장직에서 해임되며 후계구도에서 밀렸다. 이후 신동주 회장은 20157월부터 최근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신동빈 회장의 해임건을 주주제안하며 경영권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설명처럼 형제 간 우애가 변함이 없다면 동원그룹과 같은 길을 걸을 수도 있다. 동원그룹은 형제 간 갈등 없이 후계구도가 정리된 기업으로 손꼽힌다. 창업주인 김재철 명예회장은 지난해 말 경영에서 공식적으로 손을 떼면서 실질적으로 차남인 김남정 부회장이 이끌고 있다. 김 회장은 2004년 계열분리를 통해 장남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에게 금융을, 차남인 김 회장에게는 그룹을 맡겨 후계구도를 정리했다

 

스페셜경제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홍찬영 기자 home217@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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