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점 휴업' 국회에 200개 법안 입법예고

▲  21대 국회 원구성을 둘러싸고 여야가 2주째 대치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둘러싼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간 대립이 여당의 일부 상임위원장 단독 선출과 야당의 국회 보이콧으로 격화되면서 국회에 입성한 의원들은 아직까지 개원식 선서도 못한 채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모습. 

 

[스페셜경제=오수진 기자] 원구성이 늦어져 개점 휴업상태인 21대 국회에 일감이 쌓여가고 있다. 23일 오전 9시 기준 200개가 넘는 법안들이 입법예고된 상태다. 

 

입법예고는 신설 또는 개정 법률안이 소관 상위임위원회의 심사에 들어가기 전 단계로, 예고된 법률안은 국회 홈페이지나 언론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진다.  


이 과정에서 국민이나 이해 관계자들은 법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할 수 있다. 현재까지 입법예고된 법안 중 활발하게 의견이 개진되고 있는 법안들을 살펴봤다.

솜방망이 스토킹 범죄 처벌 강화… 스토킹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스토킹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9명의 동료의원이 동의한 이 법률안은 스토킹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특정인이 직·간접으로 괴롭히는 행위 방지, 3년마다 스토킹 대한 실태조사 실시와 결과 발표, 스토킹 범죄 처벌과 일정한 범죄에 대한 가중처벌 등이 골자다.  

 

스토킹은 타인을 공격하거나 살해 위협을 느낄 정도로 남을 쫓아다니는 범죄행위를 말한다. 물리적인 행위뿐만 아니라 전화, 이메일 등을 지속적으로 보내 괴롭히는 것 등도 포함된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스토킹 범죄는 583건으로, 2013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은 건수를 기록했다. 경범죄로 처벌하기 시작한 2013년 312건이던 스토킹 범죄는 2015년 363건, 2018년 544건 등으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스토킹범죄와 관련된 법률안은 1999년부 12번건이나 발의됐지만, 모두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정 의원은 성 불평등 문제부터 해결하겠다는 목표로 국회에 입성 후 21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스토킹범죄 처벌에 관한 법률안을 내놨다. 

 

정춘숙 의원은 “현행법상 스토커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는 ‘경범죄 처벌법’ 상의 ‘지속적 괴롭힘’ 뿐이며 이외에는 스토킹을 막을 수단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해자가 용기를 내 신고해도 경범죄로 구분돼 벌금 8만원이 처벌의 전부”라며 “이처럼 가벼운 처벌은 가해자를 양산하고 보복이 두려운 피해자를 더욱 위축시킨다”고 법안 제안 이유를 밝혔다.

 

정 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은 현재 입법예고 법안 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네티즌들은 범죄 관련 논문에는 스토킹을 '살인의 전조 현상'으로 본다선진국은 이미 스토킹을 중대범죄로 취급하고 있지만 한국은 경범죄로 처벌 수위가 10만 원 이하 벌금형에 불과하다. 이런 솜방망이 처벌로는 스토킹 범죄 증가 추세를 막을 수 없다고 공감을 나타내고 있다.

 

소수의 반대 의견에는 스토킹 방지법은 여성계의 이익만을 위한 졸속 악법 성적인 목적이 아닌 구애, 고백, 독촉, 채권추심 등으로 사람을 쫒아가는 행위를 국가 형벌권이 개입하는 것" 등이 있다.

 

논란의 ‘비동의 간음죄’…형법 일부개정법률안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 외 13명의 의원들은 '비동의 간음죄'를 신설하는 내용의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표한 상태에서 이뤄진 성관계를 성폭행으로 간주하는 ‘비동의 간음죄’ 도입이 목적이다. 

‘노 민스 노 룰(No means no rule)’로 불리는 ‘비동의 간음죄’는 2018년 서지현 검사를 비롯한 ‘미투 운동’에서 다수의 피해자들이 성범죄를 증언하며 논의가 시작됐다. 당시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형법 일부개정안에도 이 내용이 들어갔다. 하지만 이후 논의가 진전되진 못했다.

현재 형법 297조에 따르면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행위’라는 물리력이 있어야 성립된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 판례 또한 강간죄를 처벌하려면 가해자의 폭행이나 협박으로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이거나 ‘항거가 현저히 곤란한 정도’여야 하기에 성폭행 피해자를 보호하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왔다.

UN(국제연합) 국제사법재판소, EU(유럽연합) 유럽인권재판소에서도 ‘피해자의 동의 없는 성적 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는 비동의 간음죄 법안이 이미 통과됐다. 또한 지난 2018년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 권고 등을 통해 ‘폭행·협박’ 여부를 기준으로 성폭행 성립을 따지는 국내 형법은 국제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 법안은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일부 네티즌들은 국회 입법예고 의견 게시판을 통해 “여성의 주관, 감성에 따라 유죄를 내리도록 만드는 것은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 “남성을 어떻게든 성범죄자로 만들고 신상공개까지 시키려는 태도를 보니 남성에 대한 왜곡되고 뒤틀린 성의식을 가진 민주당 여성의원들이 국회의원 자격이나 있는 지 의문” 등 페미니즘(Feminism)의 악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대부분의 성범죄 피해자가 여성인 현실에서 ‘비동의 간음죄’가 일부에게 불리해보일 수 있지만 항상 성범죄법은 한발 느렸다는 의견도 있다. 1990년대 초에 성범죄가 연달아 터진 후 1994년 성폭력특별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으며 1993년 국내 최초 ‘성희롱 소송’은 6년간 법적공방 통해 판결이 났다.

가장 최근 n번방 사건을 보아도 성범죄 사건이 발생한 후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 등이 부랴부랴 발의되는 것에 전문가들은 시대 변화에 맞춘 성폭력 예방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뉴시스>

스페셜경제 / 오수진 기자 s22ino@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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