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제재로 4분기 이후 매출 타격 불가피
엔비디아 ARM 인수, 미래 반도체 시장 ‘요동’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한국 반도체 업계가 격랑에 휩싸였다. 세계 반도체 시장을 뒤흔들 변수가 동시에 발생한 탓이다.

 

정치·경제 등에서 세계 패권을 놓고 대립각을 세워 온 미국와 중국의 갈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미국 정부의 화웨이 제재로 드러난 양 국의 골은 쉽게 메우기 어려워 보인다. 전통적 우방인 미국과 새로운 협력자 중국 사이에서 우리 기업들은 선택을 강요받으며 반도체 큰 손을 잃게 될 처지에 놓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반도체 지각 변동을 일으킬 소식도 전해졌다. 미국 엔비디아가 ARM 인수를 공식화한 것이다. 영국 내에서의 반대여론이 강해 난관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두 회사의 인수가 마무리될 경우,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ARM의 설계를 쓰지 않는 기업이 거의 없을 만큼, 반도체 설계 부문에서 독점적인 지위에 있다. 이에 특허 이용을 무기삼아 경쟁사를 견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묘수를 찾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사법리스크로 인해 그동안 추진해 온 초격차 전략이 추진력을 잃을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D램에 편중된 사업구조로 인해 화웨이 제재 이후 시장의 상황에 영향을 크게 받게 될 전망이다.

 

큰 손화웨이 떠난 4분기 실적 타격 우려

 

15일 발효된 미국 정부의 제재로 인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계도 화웨이에 반도체 공급을 중단하게 됐다. 미국 기술과 장비를 사용한 반도체를 화웨이에 공급하려면 미국 상무부에 사전에 승인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3분기는 화웨이의 재고 쓸어담기 효과로 무난히 넘기겠지만, 문제는 4분기다. 화웨이는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큰 손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화웨이의 반도체 구매액은 208억달러(246800억원)로 애플(361억달러)과 삼성전자(334억달러)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반도체를 많이 구입했다. 이 가운데 국내 기업으로부터 사들인 부품은 13조원에 달한다.

 

국내 반도체의 두 축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화웨이를 주요 거래처로 두고 있다. 두 회사는 화웨이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D램과 이미지센서, 낸드 플래시 메모리, 디스플레이구동칩(DDI) 등을 납품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화웨이 매출 비중은 3.2%, SK하이닉스의 비중은 11.4%에 이른다. 매출로 추산하면, 삼성전자는 73700억원, SK하이닉스는 약 3조원이 화웨이로부터 나온다. 화웨이 제재가 지속된다면 연간 10조원에 달하는 매출이 증발하는 셈이다.

 

게다가 D램 가격은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31일 기준 서버용 D램 고정거래 가격은 전월 대비 4.5% 하락한 128.0달러를 기록했다. 서버용 D램 가격은 지난 7월 전월 대비 6.4% 떨어진 134.0달러를 기록한 후 두 달 연속 하락세다.

 

PCD(DDR4 8Gb 기준) 고정거래가격(기업 간 거래가격)은 전월과 같은 3.13달러를 기록했다. 6월 최고점을 찍은 이후 5.44%나 하락했다. 이날 D램 현물가격이 2.58달러를 기록한 만큼, 가격 하락이 이어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D램 고정거래가격은 시차를 두고 현물가격을 좇아가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모바일용 D램도 뚜렷한 하락세다. 시장조사업체 트렌스포드는 주요 제품인 LPDDR4X 8GB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29.5달러로 2분기 대비 8.3%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낸드플래시 역시 128GB MLC 기준으로, 전월 대비 0.9% 하락한 4.35달러를 기록했다. 7월에 6.2%가 떨어지더니 8월에도 하락세를 이어갔다.

 

2분기 비대면 문화로 인한 서버용 D램 수요가 늘어나면서 깜짝 실적을 달성했던 만큼, 서버업체들이 재고를 축척해 주문량 조절에 들어간데다 화웨이의 수주도 끊기게 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4분기에는 실적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시장의 전망이다.

 

미국-중국 싸움에 새우등 터진 삼성·SK

 

다만 화웨이 제재의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5G(5세대 이동통신)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어, 화웨이의 빈 자리를 경쟁업체들이 흡수해 세계 스마트폰 수요는 유지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영산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화웨이 스마트폰이 시장에서 대체 불가능한 수요인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다른 경쟁자들이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고 본다세계 D램 시장의 점유율 구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 스마트폰 시장 전체 수요는 유지되면서 중장기적으로 타격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섬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대체 수요처 확보에 발빠르게 나서는 한편, 미국 상무부에 마이크론, 미디어텍 등과 함께 화웨이와의 거래 승인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미국 정부가 대대적으로 화웨이 숨통끊기에 나서 현실적으로 승인이 날 가능성은 낮다.

 

변수는 화웨이 제재의 확대 여부다. 미국 정부는 SMIC 등 중국 반도체 업체로 제재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 지지세력을 의식, 반중국 정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과정에서 중국 IT기업으로 제재를 확대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이럴 경우 국내 반도체 업계의 내상은 깊어진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올 17월 국내 반도체 수출액 중 중국의 비중은 전체 41.1%에 이른다. 두 번째로 높은 국가는 홍콩으로 20.8%를 차지했다. 전체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의 비중이 무려 3분의 2에 육박하며 3366400만달러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더욱이 홍콩 수출 물량 중에는 홍콩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가는 물량이 포함되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수출량은 실제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안 될 걸 알면서도 미국 상무부에 거래 승인을 신청한 배경은 여기에 있다. 중국에는 미국의 제재를 이유로, 미국에는 제재 동참의 시그널을 동시에 보낼 수 있다.

 

ARM 품는 엔비디아중립성 지킨다지만 반도체 업계 우려

 

새로운 반도체 공룡의 탄생이 임박한 것도 국내 반도체 업계에 부담이다.

 

미국 엔비디아는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ARM 인수를 공식화했다. 인수금액만 400억 달러(474400억원)에 달하는 빅 딜로, 반도체 업계 인수합병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ARM은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회사(팹리스)로 모바일 기기에 들어가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CPU, 서버용 반도체, AI 반도체 등의 기본 설계도를 만들어 판다. 삼성전자와 퀄컴, 애플 등 1000여곳에 이르는 세계 반도체 기업이 ARM에게 저작권료를 주고 설계도를 산다. 전 세계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반도체 90% 이상이 ARM의 설계를 채택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 설계·제조사인 엔비디아는 데이터센터,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분야에 GPU가 널리 쓰이면서 IT 생태계의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최근 AI, 자율주행 등 4차 산업 관련 사업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어, ARM 인수로 CPU 기술까지 갖추게 된다면 미래 반도체 시장 선두주자로 거듭나게 된다.

 

엔비디아는 ARM이 유지해 온 중립성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반도체 업계의 우려는 쉬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엔비디아가 모바일 AP 시장에 진출하면 ARM의 협력사인 삼성전자과 퀄컴, 애플은 경쟁관계가 된다. 기술 유출의 우려가 생길 수밖에 없다.

 

특허 이용을 활용해 경쟁사를 견제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ARM의 기본 설계에 자체 기술을 덧붙여 모바일 AP ‘엑시노스를 만든다. 특허료가 인상되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일각에서는 엔비디아의 ARM 인수가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에 호재가 될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미국 반도체 업체들은 공급처를 다변화하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추가 수주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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