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동 부지 매각 사실상 무산
3자 연합과 경영권 분쟁 재점화

▲서울 중구 서소문 대한항공빌딩 로비의 모습 (사진=뉴시스)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한진그룹이 또다시 격랑에 휩쓸렸다.

 

3자연합(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KCGI·반도건설)이 한진칼 경영권 분쟁에 재시동을 걸고, 주력계열사인 대한항공의 재무구조 개선, 유동성 확보를 위해 추진하던 자산 매각도 서울시의 으름장으로 차질을 빚게 됐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혀 최악의 경영 상황에 놓인 한진그룹은 거듭되는 악재에 곤혹스런 분위기다.

 

성현동 부지, 공원 외 개발 안돼서울시 으름장에 발 동동

 

한진그룹은 내년 말까지 2조원을 마련하는 조건으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12000억원을 긴급 수혈받았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이 1조원의 유상증자를 추진하고 송현동 부지와 왕산마리나 운영사인 왕산레저개발 지분 등 자산 매각을 통해 재무구조 개선을 꾀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한진그룹의 자구 노력은 암초를 만났다. 서울시가 송현동 부지를 문화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앞서 서울시는 28일 전날 제7차 도시·건축공동위원회에서 송현동 부지를 문화공원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은 결정안 자문을 상정한 결과, 공원 조성 찬성 입장을 받았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이달 중 열람공고 등 관련절차를 거쳐 올해 안에 문화공원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36642규모의 송현동 부지는 개발과 규제 논란을 점화시킨 곳이다. ()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 시절인 지난 2008년 삼성생명으로부터 사들여 7성급 한옥호텔을 추진하려다 규제에 묶여 무산됐다. 현재 매매가는 5000~6000억원. 대한항공은 이 땅을 매각해 자금 유동성을 확보할 예정이었다. 이미 삼성KPMG·삼성증권 컨소시엄을 매각 주간사로 선정해 부지 매각절차에 돌입했다.

 

그런데 서울시가 이 땅을 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특히 각종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시가 제 3자에게 매각되더라도 재매입해서 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민간이 매각에 뛰어들 가능성이 ‘0’에 가까워졌다.

 

이에 따라 매각 가격도 크게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 측은 서울시에 유휴자산 매각시 적정 가격을 받지 못하면 배임에 해당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었다. 하지만 시는 3월에도 민간 매각시 발생하는 개발 요구를 용인할 의사가 없다며 공매 절차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한 데 이어 이번에 공원화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개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당초 서울시는 송현동 부지 매입가를 2000억원 미만으로 책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기업 발목잡기논란이 일자 부랴부랴 공정한 감정평가를 통해 적정 가격에 매입할 계획이라며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매입가를 책정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부지의 공시지가는 지난해 기준 3100억원 정도, 대한항공의 예상가의 3분의 2 수준이다.

 

조원태 회장은 “(제값에) 안 팔리면 가지고 있겠다며 헐값에 팔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다. 송현동 부지 매각이 차질을 빚은 경우 추가 자산 매각을 고려할 수 밖에 없다. 알짜배기인 기내식과 항공정비(MRO) 사업부 매각까지도 고민해야 할 수 있다. 서울시에 매각되더라도 유동성 위기는 여전하다. 자체 감정평가와 예산확보 등에 시간이 걸려 대금 납부까지 최소 2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속한 시일 안에 자본 확충이 시급한 대한항공의 속이 타들어갈 수 밖에 없다.

 

주총 취소해달라” 3자 연합 소송에 지분매입까지경영권 분쟁 재점화

 

다시 불 붙은 경영권 분쟁도 한진그룹에 부담이 되고 있다.

 

최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 반도건설로 구성된 ‘3자 연합은 지난 26일 한진칼의 327일 주주총회 결의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주주총회 사흘 전 3자 연합이 주총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낸 가처분 신청이 기각된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3월 주총을 앞두고 조 회장 측과 3자 연합은 의결권 제한 소송전을 벌였다. 3자 연합은 대한항공 자가보험 및 사우회가 보유한 지분 3.7%가 조 회장과 특수관계에 있는 지분이기 때문에 의결권이 제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조 회장 측은 반도건설이 한진칼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라고 명시한 것은 허위공시에 해당한다며 의결권이 제한돼야 한다고 맞섰다. 법원은 자 연합의 요청은 기각하고 조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반도건설의 의결권이 8.2%에서 5%로 제한됨에 따라 조 회장은 주총에서 완승을 거두며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었다. 조 회장 측의 사내외이사가 모두 선임된 데 반해 3자 연합 측에서 이사회에 진입한 인사는 단 한명도 없었다.

 

조용하던 3자 연합은 2달 만에 전열을 가다듬고 움직이고 있다. 취소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추가 지분 매입도 나섰다. 소송을 제기한 날인 지난 26일 기타법인이 한진칼 보통주 1224280(2.1%)를 매입했다. 매입 주체가 반도건설 측이 맞다면 3자 연합의 지분율은 42.75%에서 44.85%로 늘어나 조 회장측(41.3%)과의 격차를 지분율 격차를 벌리게 된다.

 

이와 함께 3자 연합은 최근 한진칼에 대한항공의 유상증자 참여 자금 조달이 어려우면 주주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실시하라는 내용증명을 보내 압박하고 있다. 조 회장의 구원투수가 등장할 수 있는 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견제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3자 연합의 행보에 대해 사실상 경영권 분쟁이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3자 연합 측이 오는 4일 임시 주총 소집을 요구할 경우 진흙탕 싸움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 여기에 법원이 3자 연합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일 경우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조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을 포함해 주총에서 의결된 모든 안건들이 무효가 된다. 반도건설의 의결권 제한, 대한항공 자가보험과 사우회 의결권 인정도 효력을 잃는다. 조 회장의 경영권 방어가 힘겨운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앞서 대한항공 측은 소모적인 지분 경쟁을 중단하도록 하고 당면한 위기 극복에 전념하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우호 지분 확보를 위한 싸움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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