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면 ‘잭팟’, 못하면 ‘쪽박’…‘극과 극’ 업계 특성 증명한 한 해

[스페셜경제 = 김다정 기자]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점에서 지나간 날들을 곱씹어보자면 평범한 일상 속에도 각자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순간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2019년을 마무리하면서 되짚어 본 제약업계도 그러하다. 올 한해도 숨 가쁘게 달려오는 시간 동안 각각의 기업들은 평탄하게 또는 이슈의 중심에 서기도 하면서 울고 웃는 한 해를 보냈다.


특히 올해 굵직굵직한 제약업계 이슈들은 이 산업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한 해가 아니었나싶다.


일반적으로 제약사들은 혁신신약을 개발을 통해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제를 공급함으로써 국민 건강을 수호하는 것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다. 동시에 이 혁신신약을 통해 새로운 국가성장동력으로서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하나의 신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또 아낌없이 투자했다고 하더라도 이 약이 꼭 상용화된다는 보장도 없다.


제약사 입장에서 신약개발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 또는 회사의 존립까지 위협하는 ‘썩은 동아줄’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올해 제약업계를 뒤흔든 일련의 이슈들은 이같은 제약업계의 특성을 잘 반영한다.


유한양행·셀트리온·SK바이오팜 등은 혁신신약을 바탕으로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했다.


반면 코오롱생명과학·신라젠·헬릭스미스 등은 ‘임상실패’를 겪으면서 제약업계 전반에 대한 리스크를 고조시켰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올 한해 제약업계의 ‘희노애락’을 담은 크고 작은 이슈들을 정리해봤다.

 

이제는 ‘제약강국’반열…올해에도 이어진 초대형 기술 수출
잇단 사건사고로 ‘불신’커져…끝나지 않은 발암물질 포비아

韓 수출 견인할 ‘신성장동력’ 제약·바이오산업

이제 제약업계와 기술수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제약사들은 연이어 기술수출 성과를 올리면서 국가 신산업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제약업계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역대 최대 규모의 글로벌 기술이전 실적을 달성했다.

 

최근 제약업계에 따르면 올해 기술이전 계약 규모의 합계액은 금액을 공개하지 않은 계약건을 제외하고도 ‘8조4892억원’에 달한다.

 
특히 올해에는 과거 상위 제약사들 위주로 이뤄지던 기술수출 계약에서 나아가 바이오벤처까지 다양한 기업들이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들 바이오벤처의 기술수출 계약규모는 4조원에 달한다.


금액 비공개 계약건을 제외하고 올해 건당 기술수출 계약 규모가 가장 컸던 곳은 ‘알테오젠’이다.

 

이 회사는 지난달 10대 글로벌 제약사(미특정)와 정맥주사(IV) 제형을 피하주사(SC) 제형을 변환해주는 인간 히알루로니다제(ALT-B4) 기술에 대한 비독점적 글로벌 라이선스 계약을 따냈다.

 

반환 의무가 없는 계약금은 1300만달러(한화 약 153억원)이며, 개발 단계별 마일스톤을 합한 총 계약규모는 13억7300만달러(약 1조6190억원)다.


올 한해 총 계약규모에서 1위를 차지한 제약사는 ‘유한양행’이다.

 

이 회사는 건당 기술계약 규모 기준으로는 4번째를 기록했지만 올해 두 건의 빅딜을 성사시키면서 계약 총 합산으로는 1위를 차지했다.


1월 미국 길리어드에 넘긴 NASH(비알콜성지방간염)치료물질 계약과 7월 베링거인겔하임과의 1조원 계약을 합하면 총 계약 규모는 1조9000억원에 달한다.


한 단계 더 성장한 韓 제약·바이오산업

그동안 국내 제약사들은 일반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거나 임상 초기 단계에서 해외 빅파마에 기술을 넘기는 방식으로 해외진출을 추진했다.


그러나 올해에는 일부 국내 제약사가 ‘독자개발’과 ‘직판’을 통해 글로벌 제약시장에 진출하는 이례적인 성과가 나왔다.

 

이는 국내 제약산업의 경쟁력이 글로벌 수준까지 성장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달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치료제 ‘엘스코프리’에 대한 임상시험을 물론 판매 허가 신청까지 신약개발 전 과정을 100% 독자진행해 미국 식품의약품(FDA)로부터 품목허가를 받았다.

 

이 약은 국내 기업이 신약개발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진행해 FDA의 승인을 받은 첫 사례다.

 

SK바이오팜은 현지 판매 인력을 채용해 직판에도 나선다. 개발 초기부터 직판을 결정하고, 3년 전부터 미국 현지에서 직판 체계 구축을 시작해 현재 완료한 상태다.


셀트리온도 지난달 25일 유럽의약품청(EMA)로부터 판매 승인을 획득한 세계 최초 인플릭시맙(Infliximab) 피하주사 제제 ‘램시마SC’를 유럽에서 직접 판매한다.

 

셀트리온이 개발한 의약품 해외 유통 및 마케팅을 담당하는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주요 유럽 시장에 이미 설립한 14개 법인 및 지점을 잇는 자체 직판망을 통해 램시마SC를 직접 판매에 나선다.


그동안 해외에서 판매되는 한국 의약품들은 현지 인프라와 영업 노하우를 보유한 파트너사의 힘을 빌려 유통됐다.

 

이 경우 현지 판매·유통사에 35~45% 가량의 수수료를 주면서 그들의 영업망을 빌려야하기 때문에 수익적인 면에서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번에 이들 기업이 직접 판매에 나서면서 수익 구조가 더욱 탄탄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초유의 ‘인보사 사태’…거센 ‘후폭풍’ 맞은 코오롱생명과학

올해 국내 제약업계는 마냥 ‘핑크빛’ 미래만 그린 것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회사의 존립을 위협한 사건사고도 잇따랐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올해 제약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이슈의 주인공은 단연 ‘코오롱생명과학’이다.


지난 4월 코오롱생명과학의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의 주성분 중 하나가 허가 당시와 다르다는 점이 뒤늦게 확인됐다.


인보사는 사람 연골에서 추출한 연골세포(HC)가 담긴 1액과 연골세포 성장인자(TGF-β1)를 도입한 형질전환세포(TC)가 담긴 2액을 3대1 비율로 섞어 관절강 내에 주사하는 세포 유전자 치료제다.


그러나 최근 2액 세포가 애초 식약처 허가를 받기 위해 코오롱생명과학이 제출한 자료에 기재된 연골세포가 아닌 신장세포(GP2-293세포)라는 것이 15년 만에 밝혀진 것이다. 이에 따라 인보사는 즉시 잠정적인 판매 중지에 들어갔다.


당시 코오롱생명과학 이우석 대표는 “이름표가 잘못 붙었을 뿐 처음부터 인보사를 구성하는 물질은 다르지 않다”며 안전성과 유효성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인보사는 지난 5월 끝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 취소처분을 확정 받게 됐다.

 

이후 인보사 사태와 관련 코오롱생명과학과 미국 자회사인 코오롱티슈진은 아직까지도 거센 후폭풍을 맞고 있는 상황이다.


인보사 투여 환자들과 소액주주에 이어 손해보험사까지 줄소송에 나섰고, 검찰은 이번 사태와 관련된 임원들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임상 중단·실패’ 연이은 부정이슈로 ‘발목’ 잡혀

인보사 사태를 겪으면서 국내 제약산업에 대한 불신은 깊어졌다.


여기에 임상 3상 통과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신약마저 줄줄이 임상 실패·중단을 겪으면서 신뢰도는 바닥을 쳤다.

 

코오롱티슈진·에이치엘비·신라젠·헬릭스미스·상스템바이오텍 등 올 들어서만 5번째 바이오기업의 임상 실패 및 중단 소식이 들려왔다.


앞서 이미 인보사 사태를 겪은지라 업계에서는 ‘K-바이오’ 위기론까지 대두됐고 국내 신약 개발에 대한 비관론은 빠르게 확산됐다.


5월 주성분이 뒤바뀐 것으로 드러나 임상 3상이 중단된 코오롱생명과학·코오롱티슈진 ‘인보사’에 이어 6월에는 에이치엘비의 경구용 위암치료제 ‘리보세라닙’이 글로벌 임상 3상에서 치료 효과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8월에는 말기 간암 환자들의 희망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 신라젠의 ‘펙사벡’이 약물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해 FDA로부터 임상 3상 중단을 권고받았다.

 

게다가 신라젠은 임상 실패 외에도 석연찮은 자금 출처 의혹부터 임직원들의 주식 매각 논란까지 끊임없는 잡음에 시달리며 불신을 키웠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9월에는 헬릭스미스의 유전자 치료제 ‘엔젠시스’의 임상 3상 과정에서 시험약과 위약을 혼합투여하면서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는 사태도 겪었다. 임상 최종 관문인 임상 3상시험에서 기초적인 실수가 발생한 것이다.


헬릭스미스 김선영 대표도 “혼용이라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고 말할 정도로 ‘황당한’ 사건이었다.


가장 최근인 10월에는 강스템바이오텍의 아토피피부연 줄기세포 치료제 ‘퓨어스템AD’가 임상 3상 결과에서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반도체에 이어 한국 경제를 이끌 ‘신성장동력’으로 평가받던 제약·바이오산업이지만 유독 올해에는 임상실패 외에도 한미약품 기술수출 반환, 코오롱생명과학 ‘인보사’ 품목허가 취소 등 산업 근간을 뒤흔드는 부정적 이슈가 많았다.


끝나지 않은 ‘발암물질’ 치료제 포비아

지난해 고혈압약 치료제인 발사르탄 성분 의약품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면서 제약업계가 발칵 뒤집힌 바 있다.


발사르탄 사태에 이어 올해에도 라니티딘·니자티딘 등 의약품 불순물 이슈가 연달아 터지면서 지난해의 악몽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9월 식약처는 발암 우려 물질이 검출된 위장약 ‘잔탁’ 등 국내서 제조·유통 중인 ‘라니티딘’ 성분의 원료의약품 269품목의 제조·수입 및 판매 중지 조치를 내렸다.


위궤양치료제 등의 주원료로 사용되는 라니티딘 성분 원료 의약품을 수거·검사한 결과, 잠정관리기준(0.16ppm)을 초과한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가 검출된 것이다.


NDMA는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소(IARC)가 사람에게 발암물질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정한 인체 발암 추정물질(2A)이다.


이후 지난달에는 니자티딘 성분 완제의약품 13개 품목에서도 NDMA가 초과 검출되면서 잠정적으로 제조·판매중지와 회수조치가 내려졌다.


국내 제약업계를 공포에 떨게 한 ‘발암추정물질’ 포비아가 아직도 진행형이다.

 

최근에는 싱가포르에서 유통 중인 메트포르민 성분의 당뇨병치료제에서도 NDMA이 초과 검출되면서 불신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해당 제품은 국내에 수입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식약처는 16일 “메트포르민에 대한 불순물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올해 안에 메트포르민 중 NDMA에 대한 시험법을 마련한 후 원료·완제의약품을 수거해 시험검사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 약은 발사르탄·라니티딘·니자티딘처럼 대체제가 있지 않아 검출 가능성에 대한 불안이 더 커지고 있다.

 

메트포르민은 처음 당뇨병 약제를 먹는 초치료 환자부터 중증 환자까지 전 단계에서 처방받는 기본 약제다.

 

당뇨병 환자의 약 80%(240만명)가 복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발암물질이 기준치 이상 검출될 경우 의료현장에서 큰 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치료 공백 우려까지 나온다.

 

[사진제공=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다정 기자 92ddang@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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