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價性比)vs가심비(價心比)…남들과 다르게 소비자 ‘心’을 잡아라

[스페셜경제=김다정 기자] 최근 몇 년 사이 유통업계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위기’라는 수식어는 이제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1인 가구의 증가와 간편식 선호 등으로 인해 소비 채널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변하면서 오프라인 유통채널은 극심한 침체기를 겪고 있다. 게다가 경기불황까지 덮치면서 소비자들은 지갑을 꽁꽁 닫았고 소비심리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런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소비는 일어나기 마련이다.


위기의 순간에서도 각 업체들은 소비자의 소비심리를 자극하고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회심의 제품을 속속 출시하면서 매출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극심한 불황에 꽁꽁 닫은 소비자의 마음을 열게 만든 유통업계의 생존전략에 대해 분석해봤다.

‘뉴트로’ 전성시대…재출시 잇따른 ‘추억’ 속 그 제품
주머니 가벼운 소비자들에게 ‘가성비’는 언제나 옳다

최근 몇 년 사이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가성비’라는 말이 큰 인기를 끌게 됐다.

 

이왕이면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을 구매하려하는 소비성향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업체들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가격경쟁을 벌이면서 이익 향상을 꾀하고 있다. 특히 포화상태에 이른 유통업계에서는 가격경쟁이 ‘유독’ 치열하다.

‘국민음식’ 라면, 저렴해야 잘 먹힌다

올해 가성비 전략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시장은 대표적인 서민음식으로 불리는 ‘라면시장’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라면업체들은 기존 인스턴트 라면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맛과 품질을 높인 프리미엄 라면을 속속 내놓으면서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올해에는 이전과는 다르게 프리미엄 제품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그러면서도 가격은 저렴한 제품이 유독 많이 등장했다. 가성비의 열광하는 소비트렌드를 반영한 것이다.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은 곳은 라면시장의 ‘절대강자’ 농심이다. 올해 2월 농심은 추억의 ‘해피라면’을 재출시 하면서 가격경쟁의 서막을 알렸다.

 

이 제품은 편의점 기준 한 봉지당 ‘700원’의 가격으로 출시됐다. 자사 주력 제품인 ‘신라면’(830원)보다 20%가량 더 싸다.


특히 지난 2008년부터 11년 동안 가격 인상을 하지 않아 대표적인 가성비 라면으로 평가받는 오뚜기 ‘진라면’ 보다 약 50원이 저렴하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자 9월초 오뚜기도 지지 않고 ‘오!라면’을 내놨다.

 

가장 기본적인 라면의 맛을 충실히 구현한 이 제품의 가격은 4개입멀티 정가 기준 ‘2480원’이다. 1개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약 620원으로, 농심의 해피라면보다 80원 가량 더 싸다. 할인가를 기준으로 하면 더 저렴해진다.


오뚜기 관계자는 “최근 가성비 제품들이 큰 관심을 모으면서 라면시장에서도 가성비 라면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며 “오!라면은 최상의 맛과 가성비로 라면의 본질을 추구하는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 제품은 출시 20일 만에 누적판매량 5000만개를 돌파하면서 온·오프라인에서 호평이 잇따랐다.


불닭볶음면으로 유명한 삼양식품도 가성비 라면 경쟁에 뛰어들었다. 삼양식품은 지난 6월 유통사인 홈플러스와 협업을 통해 ‘삼양 국민라면’이라는 최저가 라면을 출시했다.


삼양식품은 심플한 포장을 사용하고, 홈플러스의 유통 네트워크를 활용해 마케팅 및 유통 과정을 간소화 해 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품을 선보였다.


이 제품은 5개입 기준 2000원으로, 제품 1개당 가격은 400원에 불과하다. 역대급 가성비 라면으로 평가받는 이 제품은 출시 이후 지금까지 400만개의 판매수량을 기록하고 있다.


이같은 인기에 힘입어 8월에는 두 번째 협업제품인 ‘삼양 국민짜장’을 출시했다. 이제품 역시 앞서 출시된 국민라면과 같은 가격으로 시장에 나왔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국민짜장은 홈플러스에서 처음 선보인 8월 15일부터 지금까지 350만개가 판매되며, 짜장라면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평가했다.


‘뉴트로 열풍’ 최대 수혜자는 역시 하이트진로

라면시장에서 ‘가성비’가 인기를 끌었다면 다른 식음료업계에서는 ‘가심비’가 새로운 소비트렌드로 떠올랐다.


‘뉴트로(Newtro)’라고 불리는 새로운 복고 열풍은 중년 소비자와 젊은 소비자를 동시에 사로잡으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뉴트로는 새롭다’를 뜻하는 New와 ‘복고풍의’라는 뜻을 가진 Retrospective(Retro)의 합성어로, 오래된 스타일을 새롭게 즐기는 문화를 말한다.


뉴트로 열풍이 거세지자 식음료업계는 옛 제품을 재해석해 리뉴얼하거나 단종된 제품을 재출시하는 방법으로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있다.


이번 뉴트로 열풍을 적절하게 활용해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업체를 꼽자면 단연 ‘하이트진로’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4월 25일 소주 원조 브랜드 ‘진로’ 라벨을 기반으로 과거 디자인을 복원·재해석한 ‘진로이즈백’을 40년 만에 재출시하면서 중장년층과 젊은 세대를 동시에 공략했다.


그 결과 7월 6일 기준 진로 출시 72일 만에 약 1104만병을 판매하는 쾌거를 이뤘다. 출시 당시 목표한 연간 판매량을 2달 만에 달성한 것이다.


진로는 기존 초록병의 소주와 달리 과거에 사용된 것과 같은 하늘색의 목이 짧은 병을 사용했다. 파란색의 라벨에는 브랜드를 상징하는 두꺼비 디자인을 재현했다.


단순히 제품을 재출시하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한 마케팅도 활발하게 전개했다.

 

하이트진로는 80년대 주점을 현대적 감성으로 재현한 진로의 팝업스토어 ‘두꺼비집’ 강남점과 홍대점 2곳을 운영했다.


하이트진로 마케팅실 오성택 상무는 “뉴트로 제품은 95년 전통의 하이트진로만이 선보일 수 있는 제품으로, 복고에 집중하기보다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제품력과 완성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올디스 벗 구디스’…과거 향수 자극하는 제과업계

올해 뉴트로 열풍은 특히 제과업계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중장년층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특성을 적절히 이용해 ‘추억의 과자’를 재출시하고 있다.


지난 4월 롯데제과는 분홍색의 ‘꼬깔콘 달콤한 맛’을 20여년 만에 새롭게 선보이고 뉴트로 열풍에 동참했다. 이 제품은 1980·90년대 ‘꼬깔콘Ⅲ’라는 이름으로 판매됐다.


롯데제과는 꼬깔콘 달콤한 맛을 출시하면서 옛 시절의 분홍색 색상과 꼬깔콘 특유의 흰 색 때 바탕의 빨간색 글씨체를 그래도 살려 전통성을 유지했다. 맛에서는 현재 트렌드에 맞춰 더욱 부드럽고 진한 달콤한 맛을 냈다.


이어 이달에도 지난해 3월 단종됐던 ‘갸또’를 1년 9개월 만에 새롭게 선보였다. 이번에 선보인 갸또는 기존 제품의 특징은 그대로 살리면서 치즈의 풍미를 더하고 화이트 크럼블을 토핑하는 등의 새로움을 더했다.


오리온은 올해 초 ‘치킨팝’을 기존 대비 10% 증량해 3년 만에 재출시한데 이어 4월 마켓오 다쿠아즈도 5년 만에 다시 내놨다. 치킨팝은 1020세대를 중심으로 팬덤이 형성돼 누적판매량 2000만봉을 돌파했다.


롯데푸드도 2011년 단종된 별난바에 탄산캔디를 적용해 현대적으로 맛을 업그레이드한 ‘별난바 톡톡’을 선보였다.


제과업계 이외 식품업계에서도 단종됐던 제품이 속속 부활하고 있다.


CJ푸드빌이 운영하고 있는 ‘뚜레쥬르’는 1970~80년대 동네 빵집에서 쉽게 볼 수 있던 ‘맘모스 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출시한 ‘밤이 듬뿍 맘모스’를 선보여, 출시 5개월 만에 100만개 넘게 팔렸다.


SPC삼립도 198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출시한 빵 3종을 재해석한 ‘초코방울이’, ‘덴마트데니쉬’, ‘꿀떡꿀떡’ 등을 내놨다.

가성비·가심비 모두 잡은 농심 ‘해피라면’

그런가하면 올해 유통업계 핫이슈였던 ‘가성비’와 ‘가심비’를 모두 사로잡은 제품도 있다.

 

앞서 가성비 제품으로 거론됐던 농심 ‘해피라면’은 두 트렌드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대표적인 제품이다.

 

농심 해피라면은 1982년 출시 후 단종됐다가 최근 재출시된 제품이다. 나팔 부는 아기천사 캐릭터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1980년대 농심의 성장을 이끌었다.


아직도 온라인에는 많은 소비자들이 ‘어렸을 때 끓여먹고 부숴먹으며 배고픔을 달래줬던 라면’으로 해피라면을 추억하고 있다.


이 제품은 출시 40일 만에 1100만개가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 이처럼 해피라면이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끈 데에는 단순히 저렴한 가격보다는 뉴트로 컨셉이 주효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재출시 직후 중장년층은 주로 “해피라면을 먹으며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올랐다”, “옛날에 즐겨 먹던 라면이 다시 출시되니 반갑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농심은 해피라면을 재출시하면서 트레이드마크인 ‘나팔 부는 아기 천사’ 캐릭터를 포함, 옛 패키지 디자인을 그대로 재현해 뉴트로 느낌을 살렸다.


해피라면의 성공적인 부활에 힘입어 농심은 올해 여름 두 번째 뉴트로 제품을 선보였다.


1993년 처음 출시돼 2004년까지 판매됐던 도토리비빔면을 업그레이드해 ‘도토리쫄쫄면’으로 재출시했다.


농심 관계자는 “뉴트로가 올해를 강타할 대표적인 트렌드로 보고 관련 제품을 추가로 선보일 예정”이라며 “소비자의 흥미를 유발하면서 라면시장에서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가겠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하이트진로, 롯데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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