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사수…정권의 사법장악?’
[스페셜경제=김수영 기자] "옛날 어느 마을에 농사를 지으며 사는 형제가 있었다. 어느 날 밤 형이 생각하길, 동생은 결혼해 새로 살림을 차렸으니 쌀이 더 필요할 거라 생각해 몰래 동생의 집으로 자신의 쌀가마니를 옮겨 놓았다. 같은 날 밤 동생 또한 형은 식솔이 많아 쌀이 많이 필요할 것이라 여겨 자신의 쌀가마니를 형의 집으로 옮겼다. 이튿날 형제는 곳간을 보고 전혀 쌀이 줄지 않았음을 알고 의아해 하면서도 그날 밤 또다시 서로 쌀가마니를 옮겨 놓았다. 셋째 날, 같은 행동을 반복하던 형제가 마주치며 서로 쌀가마니를 옮겼음을 알고 부둥켜안은 채 눈물을 흘렸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전래동화인 ‘의좋은 형제’ 줄거리다. 서로를 위하고 입장을 배려한 이 이야기는 형제간 우애와 의리라는 교훈을 강조하며 끝을 맺는다.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있을까. 물론 집안 환경마다 각양각색일 것이다. 누구나 칭찬하고 부러워할 우애를 자랑하는 형제자매가 있는가 하면 서로 만나기만 하면 다투는 형제자매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옛말에 이르기를,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던가. 그저 전해 듣기만 할 뿐인 소위 ‘높으신 분들’이 그럴듯한 모양새를 보여준다면 국민들 또한 그에 감화될 수 있으리란 기대가 마냥 거창하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지난달 국회가 패스트트랙 통과로 몸살을 앓을 때,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눈여겨보던 형제가 있었다.
하지만 이 형제의 시선은 자신의 쌀을 내주는 것이 아닌 어떻게든 주지 않으려, 어떻게든 빼앗아 오려는 모습을 보이는 등 우애가 아닌 다툼에 쏠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문무일 검찰총장의 공개반발로 시작된 다툼은 한 달이 되어가는 현재 경찰이 당정청 협의로 나온 중재안을 수용하며 일시적인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남아있는 상태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검찰과 경찰 형제가 두고 다투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짚어봤다.
검찰 반발의 시작, 문무일의 공개 항명
지난달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검경 수사권 조정안(형사소송법·검찰청법 일부 개정안)은 △검찰의 수사·지휘권한 축소 △경찰에 1차적 수사권·수사종결권 부여 △피의자 신문조서(피신조서) 증거채택 여부 등에 대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기존 검찰이 가지고 있던 기소독점주의(기소는 검사만 가능)와 기소편의주의(기소 여부는 검사 재량), 경찰에 대한 수사 지휘·통제 등 막대한 권력행사로 인한 고질적 폐해를 사전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검경 권한 분산작업의 일환이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195조와 제196조에 따르면 수사권을 쥐고 있는 주체는 검사로, 경찰은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 경찰이 범죄행위를 인식하고 수사를 시작할 수는 있지만 검사는 사건자체를 검찰로 가져오거나 수사를 직접 지휘하는 등 경찰에 대한 직간접적인 지휘·통제 권한을 갖는다.
하지만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은 검사가 통할하는 수사권을 경찰에게 일부 넘기고, 검사는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 범죄 △경찰 직무관련 범죄 △경찰이 송치한 범죄와 관련한 위증·허위감정·친족특례·무고 등에 대한 범죄에 한해서만 직접 수사권을 갖게된다.
수사권 조정안은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지난달 30일까지만 해도 별다른 진통이 없었다.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 등 여야4당은 선거법 개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패스트트랙 지정 저지에만 열을 올렸을 따름이다.
하지만 여야4당이 합심해 패스트트랙이라는 주춧돌위에 세운 수사권 조정안은 불과 하루 만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원지는 다름 아닌 검찰 우두머리인 문무일 검찰총장이었다.
해외 순방 중이던 문 총장은 지난 1일 대변인실을 통해 “현재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률안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 형사사법절차는 반드시 민주적 원리에 의해 작동돼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밝혔다.
문 총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현재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에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수사권 조정안은 검찰이 가지고 있던 전권(全權)적 권능을 경찰로 이관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권한을 행사하는 기관만 변경되는 것일 뿐 아니라 오히려 경찰이 가지고 있는 정보기능과 결합해 기본권의 심각한 침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수사권 조정안을 두고 대검찰청 김웅 미래기획형사정책단장은 지난 9일 MBC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에서 “형사사법구조는 복싱과 같다”며 “검사가 레프리 없이 경기하니 경찰도 레프리 없이 경기하게 해달라는 구조로 가게 된 것”이라 비유했다.
문 총장도 지난 16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엉뚱한 부분에 손을 댄 것”이라며 “직접수사라는 예외적 상황을 통제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문 총장은 그동안 검찰이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는 등 지금의 논의에 적지 않은 원인을 제공했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남긴 것은 검찰의 변화 의지였다.
문 총장은 “검찰의 직접수사 총량을 대폭 축소하고 수사착수 기능의 분권화를 추진하겠다”며 “검찰이 종결하는 고소, 고발사건에 대한 재정신청을 전면 확대해 검찰의 수사종결에 실효적 통제가 가능하도록 하겠다”고도 전했다.
재정신청은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대해 고소·고발인이 직접 법원에 이의를 제기하는 제도로, 법원의 인용결정이 있으면 검사는 기소의무를 지게 된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KBS 취임2주년 대담에서 “검찰은 스스로 개혁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놓쳐왔다. 셀프개혁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 국민들 보편적인 생각”이라며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의 자체개혁을 불가능하다고 판단, 제도적 차원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구체적 대안은 없어…그저 반대만 계속
빼앗는 자와 지키려는 자…두 사람의 신경전
일단 문 총장의 말은 제법 그럴듯하다.
명실상부 국내 최고 정보기관이던 국가정보원이 민간사찰 등 끊임없는 의혹을 받아온 데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국내기관에 파견하던 정보관(IO·Intelligence Officer) 제도와 정치관여 가능성이 있는 부서를 폐지하고 정치관여 금지를 법제화하는 등 위법한 정보활동을 통한 직무일탈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이렇듯 국정원이 국내정보 업무에서 손을 떼며 사실상 유일한 정보기관으로 활동하게 된 경찰이었지만, 제18대 대선 당시 정보경찰을 동원해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이 구속되는 등 문제가 발생한 사정을 고려한다면 정보력을 갖춘 국가기관이 수사권까지 갖게 될 경우 침탈될 수 있는 국민 기본권에 대한 문 총장의 우려는 일응 합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문 총장의 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경찰이 수사권을 가져가더라도, 어떠한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제시는 없이 ‘안 된다’, ‘반대한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취임 당시 그가 검찰개혁 의지를 밝혔음에도 임기를 거의 다 채우도록 반응이 없다가 이제야 부랴부랴 검찰 자체개혁에 착수하면서도 기어코 수사권을 내려놓지 못하는 모습은 여전히 ‘내 쌀가마니’에 미련이 남아있음을 짐작케 한다.
수사권 조정안 알력이 소위 ‘밥그릇 싸움’이라 폄하되는 이유다.
심지어 패스트트랙 정국 이후 문 총장이 공개적으로 반발하며 수사권 조정안 문제가 점점 고조됨에 따라 검찰이 강신명 전 경찰청장을 구속하고, 경찰 또한 김수남 전 검찰총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입건하며 맞불을 놓는 모양새는 빼앗는 자와 뺏기지 않으려는 자의 줄다리기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싸늘한 여론…검찰, 지은 죄 때문에 지켜만 보나
검찰은 입장 고수…당정청은 합의 도출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리얼미터가 지난 6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검경 수사권 조정에 찬성한다는 여론은 과반을 넘어선 57.3%로 반대 입장을 표한 30.9%의 약 2배 가까운 수준으로 나타났다(5월3일 조사, 95%신뢰수준에 표본오차±4.4%p, 자세한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
검찰에 대한 불신이 이미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여전히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문 총장은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근본적 해법 없이 경찰 권한만 확대시키는 것은 위험하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16일 기자간담회 당시 ‘사전통제 방안이 마련되면 경찰에 수사권을 줘도 되느냐’는 질문에 “착수하는 사람은 종결해선 안 된다. 종결할 수 있는 사람은 착수하면 안 된다”라며 “이 원칙을 보다 강화해야지 검찰이 해봤으니 경찰도 해보라는 식은 안 맞는다는 것”이라 답했다.
수사의 시작과 종결이 분리돼야 한다는 의미다.
양측의 좁혀지지 않는 검찰의 수사권 조정 이견과 관련해 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당정청 협의회를 열고 접점을 모색하기도 했다.
지난 20일 여야정은 △국가수사본수(국수본) 신설 △정보경찰 정치참여 시 형사처벌 및 활동범위 법제화 △경찰위원회 통제권한 대폭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경찰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먼저 국수본의 경우 수사부서장이 사건에 대한 구체적 지휘·감독권한을 행사하며, 이에 대해 경찰청장이나 지방청장·경찰서장 등 관서장은 구체적 수사지휘를 할 수 없게 된다. 국수본부장은 수사경찰에 대한 인사·감찰·징계권을 갖고 경찰 수사권한을 전반적으로 통제한다.
또 경찰권한 비대화의 이유로 거론되던 정보경찰은 규모를 축소하는 동시에 국회 등 상시출입을 중단해 정치개입과 사찰논란을 차단하고, ‘경찰공무원법’과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정치관여시 형사처벌 및 정보활동의 근거와 범위를 명확히 하도록 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21일 이 같은 내용에 대해 적극 찬동하며 “수사권 조정 법안이 민주적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문 총장의 “형사사법 절차는 민주적 원리에 의해 작동돼야 한다”는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다만 이에 대해서도 국수본이 경찰 내부에 설치되는데 과연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당정청이 내놓은 협의 결과에 대해 검찰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고 지켜만 보고 있는 상태다.
국수본, 정권 하수인 될 수도‥입법논의 계속돼야
검찰·야권 우려는 경청해야…野 “대통령 하명수사본부 만드는 꼴”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는 일찍부터 문제가 제기돼 왔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비추는 영화에는 검사라는 존재가 단골로 등장한다. 그들은 언제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각계각층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때로는 권력 앞에 한없이 약해지다가도 기회만 있으면 목덜미를 물어뜯는 모습에 정치권에서는 검찰의 태도를 보면 정권의 레임덕이 왔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이 우스갯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경찰 또한 다르지 않다. 버닝썬 사태에서 승리와 ‘경찰총장’ 간 유착관계가 드러났고,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18대 대선 당시 정보경찰을 통해 선거에 개입한 의혹에 연루돼 구속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문 총장의 우려는 이미 현실에 존재했던 셈이다.
수사는 공권력이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합법적 폭력수단’이 될 수도 있다. 국민의 기본권, 특히 신체의 자유에 대해 막대한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러한 권한이 막강한 정보력과 결합될 경우 사회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은 금전으로 환산될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런 면에서 그만큼 신중한 문 총장의 태도는 박수 받아 마땅할 일이다. 그러나 어떠한 대안의 제시도 없이 그저 ‘안 된다’, ‘반대한다’고 외치며 들고 있는 수사권을 내려놓지 못하는 모습은 도리어 자신의 ‘쌀가마니’를 뺏기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진즉에 검찰개혁을 천명한 바 있는 문 총장의 이런 반발을 두고 그가 ‘변절했다’는 것은 틀린 판단이다. 그는 기존 입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2017년 7월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그는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기관 간 권한배분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인권을 철저히 보호하는 시스템으로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문 총장은 줄곧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에는 반대했지만, 수사의 개시와 종결기관의 분리에는 찬성해왔다.
한편 야권 일각에서는 결국 경찰 내부에 설치돼 구체적 지시를 받지 않고 활동하는 국수본을 청와대가 장악하는 시도라 비판한다. ‘주인’의 손을 물어뜯던 검찰에 대한 정권의 불신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2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공수처에 이어 ‘대통령 하명수사본부’를 만드는 꼴이 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를 표했다.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 또한 23일 국수본 설치 결정을 두고 “얼핏 들으면 그럴싸하지만 자칫 청와대 지휘를 받는 괴물 수사기관이 탄생할 수 있어 심각하게 이 사안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경고했다.
스페셜경제 / 김수영 기자 brumaire25s@speconom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