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부 사퇴론에 제3지대 역설…공천불복 통한 전화위복 노리나?

▲ 4.3 재보선에서 참패한 바른미래당의 내홍이 심해지는 가운데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의원총회에서 손학규 대표와 유승민 의원 등 참석자들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수영 기자] 언제나 그렇듯 선거를 앞둔 시점에는 입지가 불안정한 현역 국회의원들의 탈당 내지 당적변경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 기간을 정치인의 ‘이사철’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1년여 앞둔 지금과 같은 때에는 더욱 그렇다. 철새들이 계절이 바뀌면 보다 나은 환경을 찾아 대이동 하듯 정치인들 또한 좀 더 나은 여건을 찾아 으레 대이동의 움직임을 보이곤 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비단 국회의원 개인들에게만 국한되는 현상은 아니다. 정당차원에서의 움직임이 일어나기도 한다.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는 바른미래당이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바른미래당은 과거 새누리당에서 탈당한 비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바른정당과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분열된 국민의당의 합당으로 탄생했지만, 상대적으로 이념적 중도성을 띨 뿐 양면에 서 있는 다른 계파 출신 간 잦은 정체성 갈등에 골머리를 앓아왔다.

최근에는 지도부 총사퇴라는 목소리까지 나올 만큼 격화된 현 내홍의 배경에는 1년 앞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선거에 대한 우려가 적잖이 깔려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제기하기에 충분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총선을 1년 앞둔 지금 바른미래당을 중심으로 향후 손학규 대표가 취할 수 있는 전략에 대해 고찰해봤다.

◆ 내홍과 반목 속에 다가오는 선거, 커지는 고민

바른미래당은 현재 심각한 갈등상황에 직면해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던 패스트트랙 드라이브(선거법개편·공수처설치·검경수사권조정안) 협상과정부터 들려오던 마찰음이 보궐선거를 전후해 기다렸다는 듯 터져 나오기에 이르렀다.

4·3보궐선거 과정에서 후보를 내지 않으면 교섭단체이자 공당으로서 참여성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찬성 측과, 보선 결과가 안 좋으면 얻은 것도 없이 당내 갈등만 커질 수 있으니 후보를 내지 말고 자유한국당을 밀어줘야 한다는 반대 측의 우려가 충돌한 것이다.

보선 결과 창원·성산에서 한국당이 정의당에 불과 504표 차로 패배한데다 바른미래당 이재환 후보마저 기대에 못 미치는 득표율을 얻자 바른미래당 최고위원들이 최고위원회의에 대거 불참하며 보이콧을 선언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결과적으로는 반대파의 우려가 맞아 들어간 셈이다.

▲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제87차 최고위원회의에서 손학규 대표가 모두발언하고 있다. 이날도 하태경, 권은희, 이준석 최고위원 3명은 불참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추석 전 지지율 10%달성’이라는 조건부 사퇴 카드를 꺼내들었음에도 하태경·이준석·권은희 등 바른정당계 최고위원들은 이에 아랑곳 않고 즉각적인 사퇴를 주장하며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런 목소리가 바른정당계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바른미래당의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내부갈등으로 비춰질까 바른정당계가 오히려 자중하고 오히려 국민의당 출신들이 얘기하는 분위기도 있다”면서 “그런 생각이 있어도 대외적으로 표출하기가 쉽진 않다. 최고위원의 경우는 선출직 4명 중 3명이 바른정당 출신이라 바른정당쪽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내홍과 반목이 거듭되는 상황에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인사들은 고심이 깊을 수밖에 없다. 만에 하나 당이 분열되는 사태라도 발생한다면 흡수될지, 창당·무소속 등 새 길을 찾을지 ‘불편한 양자택일’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당적변경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거론되고 있는 의원은 단연 바른미래당 이언주 의원이다.

이 의원은 창원성산에 내려가 4·3보선 지원유세를 펼치던 손학규 대표를 겨냥해 ‘찌질하다’ 등 원색적 비난으로 물의를 빚으며 지난 5일 당 윤리위원회로부터 1년의 당원권 정지 처분까지 받았다.

21대 총선이 내년 4월 15일인 점을 감안하면 이는 사실상 공천권 박탈과 진배없다. 이 의원의 ‘탈당설’이 가장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이 의원은 사실상 탈당의사까지 공공연하게 내비치며 징계가 이뤄진 이후에도 재심 신청을 하지 않았다.

정치인의 생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공천권을 박탈당한 상황에서 그가 이러한 행보를 연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이 의원의 이번 발언을 ‘전략적인 수’라 평가한다.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통화에서 “이 의원은 한국당에 있는 것보다 바른미래당에서 그런 목소리를 내는 게 더 주목받았을 것”이라며 “오히려 한국당에는 (이 의원 발언과 같은)그런 말을 하는 분들이 많아 주목을 못 받는다. 전략적으로 그런 것 아닌가하는 분위기가 있다. 총선을 겨냥한 생존본능”이라 말했다.

한편 바른정당 출신인 정운천 의원 또한 탈당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 의원은 15일 “지역장벽 타파, 전북 예산 확보, 석패율제 도입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어느 당이든 가겠다”며 여러 가능성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친이계로 분류되던 정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 때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바른정당으로 옮겼다.

보수 대통합론으로 불거진 탈당사태에서 바른정당 출신 인사들과 함께 끝까지 남아 자강론을 고수했지만 지난해 지방선거 패배 이후 한국당으로 복당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다만 정 의원은 한국당으로의 복당만을 염두에 두지는 않은 채 “제3지대 합류, 무소속 가능성도 열어두고 지역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한국당에 대해 거부정서가 강한 그의 지역구(전북 전주시) 특성을 고려하면 ‘복당’이 쉬운 결정만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 손학규의 ‘설계’와 부위정경(扶危定傾)…그리고 제3지대 형성

누가 방아쇠를 당기든 일단 첫 탈당의 물꼬가 트인다면, 총선을 앞둔 ‘바른미래당 엑소더스’로 시작되는 야권 개편이 본격화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이탈이 바른미래당에서만 일어날 것이냐 묻는다면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공천 시즌이 다가오면 그 어떤 정당에서도 공천불복 움직임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지역구에 어느 정도 지지기반을 확보해 둔 현역 의원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손학규 대표는 15일 당 지도부 총사퇴론에 대해 중도개혁세력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추석 전 지지율 10% 미달 시 사퇴하겠다며 부위정경(扶危定傾·위기를 맞아 잘못을 바로잡음)을 강조했다.

중심을 잡아가기 시작한 체제를 깨고 새로운 지도부 수립하는 것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 거대양당에 의해 분해될 수 있다는 손 대표의 정무적 판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거대양당 극단대립이 거세지고 대결과 투쟁의 정치에 신물이 난 국민들은 정치개혁을 열망하게 될 것”이라면서 “한 쪽에 경도된 노선으로는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국민요구를 결코 수용할 수 없다”며 제3지대 정당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4.3 재보선에서 참패한 바른미래당의 내홍이 심해지는 가운데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손학규 대표의 모습

 

이런 손 대표의 발언이 마냥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손 대표는 이번 위기를 통해 오히려 내부 잘못을 바로 잡고 단숨에 도약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다.

중도를 표방하고 있어 주요정당 이탈자들을 모두 품을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정당이 바른미래당인 만큼 위기로까지 격화된 바른미래당의 내재적 갈등요소, 즉 이념적 다양성이 오히려 총선과 공천이라는 촉매를 통해 일진월보(日進月步·나날이 발전함)의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여권 쪽에서는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전 청와대 친문(親文)인사들이 총선을 앞두고 대거 복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다가 조국 민정수석 등 아직 현직으로 남아 있는 청와대 인사들과 이낙연 국무총리 차출론까지 도는 만큼 이들이 실제로 내년 총선에 출마하게 된다면 비문(非文)진영에 대한 ‘공천학살’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추석 전 지지율 10% 달성이라는 과제와 국민들이 대안정당으로 거대양당이 아닌 중도세력을 선택할지, 거둔 세력의 지속적 유지가 가능할지의 문제는 일단 차치하더라도, 손 대표가 거대양당의 공천불복세력을 잘 어울러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둘 수만 있다면 21대 국회가 사실상의 이항대립(二項對立) 구도에서 삼항순환(三項循環)의 관계로 구성될 가능성은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비록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의석확보에 혈안이 된 이삭줍기라 비판할 소지가 없지 않지만, 손 대표의 ‘그림’대로 안정적인 제3지대를 성공적으로 그려낼 수 있다면 차기 대권까지도 노려봄직한 승부수일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실패할 경우 사퇴까지 공언했던 만큼 손 대표 정치경력의 종착역이 될 수도 있는 일종의 배수진인 셈이기도 하지만, 내년 즈음해서 드러날 손 대표의 ‘큰그림’이 사실주의가 될지 낭만주의에 머물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다.

<사진제공 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수영 기자 brumaire25s@speconomy.com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