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日 틈새 노린 북·중·러 도발…文, ‘인도·태평양 전략’ 택할까

▲(좌)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스페셜경제=신교근 기자]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좌관이 방한했던 지난 23일 중국·러시아 군용기가 KADIZ(한국방공식별구역)와 독도영공을 침범했다.


더구나 북한은 25일 오전 원산 일대에서 탄도미사일 2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해 마치 중·러와 입을 맞춘 듯 보였다.

이를 두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신(新)냉전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음은 물론 대한민국이 선택의 기로에 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아베 신조 일본 내각과 마찰을 빚으면서 한·미·일 삼각동맹 이른바 ‘해양 민주세력’은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는 반면, 북·중·러의 ‘대륙 전체주의 세력’은 ‘밀월기’를 즐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독도 주변에서 이뤄진 중·러 군용기의 계획된 도발적 비행은 자신들의 ‘찰떡공조’를 과시함과 동시에 한미일의 ‘균열된 틈’을 파고들었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특히 볼턴 보좌관이 동맹인 일본을 거쳐 한국을 찾은 날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가 출국한 후엔 북한이 단거리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점은 한반도를 둘러싼 ‘해양 민주 세력 vs 대륙 전체주의 세력’ 간 신냉전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듯 보였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한미일 동맹이냐, 북중러 편입이냐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전략적 모호성’이냐에 놓인 문재인 정부의 ‘안보 딜레마’에 대해 면밀히 짚어봤다.

갈림길에 선‘The Negotiator 文’

중국몽인가, ‘해양 민주세력’인가

 

, “중국몽에는 함께할 것”“일본은 동맹 아니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2017년 5월호에서 당시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을 아시아판 표지모델로 선정했다.


당시 타임지는 문 대통령을 ‘The Negotiator(협상가)’라고 묘사했다.

타임지로부터 ‘협상가’로 묘사됐던 문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17년 12월 베이징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라고 칭한 뒤 “중국몽이 중국만의 꿈이 아니라 아시아 모두, 나아가서는 전 인류와 함께 꾸는 꿈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도 작은 나라지만 책임 있는 중견국가로서 그 꿈에 함께 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찌된 영문인지 중국을 ‘대국’, 한국을 ‘소국’이라 칭하며 치켜세웠건만 중국의 사드(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은 2017년 3월부터 시작해서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인 상태다.

중국에겐 스스로 저자세를 보인 문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만큼은 “동맹이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단호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9월 미국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업무오찬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총리 면전에서 “미국은 우리의 동맹이지만 일본은 동맹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난해 5월 9일 일본 도쿄 총리공관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오찬에서 문 대통령은 아베 총리로부터 ‘취임 1주년 축하’ 딸기 케이크를 받았지만, “이가 안 좋아 단 것을 못 먹는다”며 이를 사양했고 대신 한국 측 참모들이 나눠먹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이었을까. 일본은 지난 4일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고순도불화수소(에칭가스), 포토리지스트, 플루오린폴리이미드)에 대한 수출규제를 감행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 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관련한 일본의 경제보복이란 게 중론인데, 문 대통령이 중국은 치켜세우고 일본에겐 단호한 외교력을 선보인 탓도 크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일본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규제에 이어 7월말이나 8월초께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 우대국)에서 제외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만약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할 경우 대한민국 산업 전반을 흔들릴만한 심각한 타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문재인 대통령


일은 보복, 북·중·러는 도발대한文국=총체적 난국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국경제의 위기감이 감돌고 있는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 23일 KADIZ와 독도 영공 침범 등 한국을 향한 도발을 감행했다.

미국이 2016년부터 대(對)중국 봉쇄 정책의 일환으로 한반도 사드 배치를 추진하면서 중러가 전략적 이해를 같이하기 시작했는데, 사드에 대한 중러의 대응이 누적돼 터진 것이 이번 군용기 침범으로 나타났다는 해석도 있다.

시각을 한반도 주변 정세로 확대해 보면, 현재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다.

어느 쪽에도 쏠리지 않는 균형외교를 펼치겠다고 공언한 문 대통령으로서는 이 상황에서 미·일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인도 태평양 전략’에 동참을 꺼려 왔다. 동맹국인 미국 입장에선 서운할 수 있겠지만 ‘일대일로(一帶一路 : 육상·해상 실크로드)’를 추진 중인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다.

작게는 화웨이 사용 문제 등 한국은 미·중 양국으로부터 ‘적’과 ‘친구’ 중 어려운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만으로도 골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일본까지 경제보복에 나선 상황에, 김정은은 25일 690여km를 날아간 러시아 ‘이스칸데르’급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문재인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공들여왔던 미북관계 개선도 지난 2월 하노이 미북정상회담 결렬 이후부터 삐걱되는 점도 악영향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김정은은 한술 더 떠 미북관계에서 문재인 정부는 빠지라고까지 했다.

종합해보자면 현재 대한민국은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선택의 강요를 받고 있고 ▶중국의 우방인 러시아는 우리 영공을 무단침입 했으며 ▶우리 우방인 일본은 경제보복에 나섰고 ▶북한은 비난과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는 등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인 상황이다.


▲문재인(사진 왼쪽)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지난달 27일 일본 오사카 웨스틴 호텔에서, 2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오사카 리가로얄 호텔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文, 호르무즈해협 파병으로 ‘인도·태평양 전략’ 택할까


한편, 볼턴 보좌관은 24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찾아 지난달 이란의 유조선 피격 사건과 미군 무인기 격추 사건 등으로 인한 중동 호르무즈해협 파병에 대해 논의했다. 사실상 청구서를 내민 셈이다.

청와대는 “양측은 민간 상선의 안전한 항해를 위한 국제적 노력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이와 관련해 특히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해상 안보와 항행의 자유를 위한 협력 방안을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일본의 경제보복 상황에서 미국의 ‘중재자’ 역할을 필요로 하는 우리로선 파병 제안을 거부하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규재 <펜앤드마이크> 주필은 지난 11일 페이스북에 “공교롭게도 때를 맞추어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대이란 연합군’을 편성한다”며 “문재인의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일본을 혼내달라고 미국에 매달리자면 미국이 요구하는 호르무즈 해협건 정도는 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일본의 경제보복과 중러의 KADIZ 침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두고 한미일 공조 및 해양 민주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20일 유튜브 채널 ‘이춘근TV’를 통해 “(청와대 및 정부가) 현 사태의 원인과 내용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행해지고 있지 않다고 본다”며 “단순히 역사 전쟁에 대한 경제 보복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1세기 국제 정치권력 재편의 맥락에서 봐야 한다”며 “‘해양 민주 세력’과 ‘대륙 전체주의 세력’의 대결”이라고 규정했다.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도 23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일본이 우리에게 경제 강압을 시작했다”며 “일본의 경제 강압은 미국과 비밀리에 연계된 것이라 확신한다”고 공언했다.

이어 “너무 친북적이고 중국에 저자세인 문재인 정부의 생각을 완전히 돌려놓아서 한미일 공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문 대통령이 깨닫게 하려는 미일간의 공동이익이 관철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재 한국당 원내대변인 역시 26일 논평을 통해 “한 마디로 대한민국을 한반도 동네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한미일 공조가 와해된 틈을 타 북중러 ‘원팀’이 대한민국을 동북아 호구로 만들어버린 상황”이라고 개탄했다.


그동안 ‘균형외교’, ‘전략적 모호성’을 택해온 문재인 정부가 ‘대이란 연합군’으로 읽히는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택하고 해양 민주세력에 동참할지, 아니면 문 대통령의 언급대로 ‘중국몽’을 따라가 대륙 전체주의 세력에 새롭게 편입할지는 안보 딜레마에 빠진 문재인 정부의 선택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스페셜경제 / 신교근 기자 liberty1123@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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