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난국의 한국가스공사…충격적 방만경영 실태[막전막후]

김수영 기자 / 기사승인 : 2019-10-21 10:5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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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은폐부터 무성과 R&D까지…신임 사장 국감장서 진땀

 

 

[스페셜경제=김수영 기자] 매년 9월부터 시작되는 정기국회 개회 전이나 회기 중 진행되는 국정감사를 눈앞에 둔 행정부와 유관기관들은 여름이 끝나갈 무렵부터 바짝 긴장한 채 철옹성 구축에 여념이 없다. 

본래 국회 고유의 권한이라야 할 입법권은 행정의 전문성과 특수성을 고려해 행정입법이라는 명목으로 정부에 의해 이뤄지기도 하는데, 이로 인해 국회의 대 행정부 견제는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 국감이다.

행정부로서는 장관까지 출동해가며 오롯이 수비에만 집중해야 하는 관계로, 미처 파악하지 못한 문제점 등에 대해 집중공격을 받으며 의도치 않게 특정 국회의원을 ‘국감 스타’로 만들어주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매 국감마다 자주 거론되는 단골손님도 있기 마련이다. 올해의 경우 법무부, 검찰 등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기관이 ‘귀빈’으로 접대될 예정이었지만 지난 14일 조 전 장관의 돌연 사퇴로 인해 ‘계산서’는 다시 단골손님들을 향하고 있다.

특히 자연독점 문제로 인해 국가가 좀처럼 민영화를 허하지 않는 에너지 사업이나 공익사업 관련 기관은 정부의 각종 정책을 일선에서 수행하는 만큼 이맘때면 국회가 눈에 불을 켜고 벼르고 있다. 

한국 가스공사의 경우 지난해 9월부터 올해 7월까지 약 10개월 간 사장의 부재상태가 이어지며 기존 임직원들의 비리와 도덕적 해이와 더불어 안전사고 문제까지 잇따랐다. 하루 만에 같은 곳에서 세 건의 화재가 발생한 경우도 있었다.

이번에 <스페셜경제>는 장기적으로 국내 가스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에너지 기업 한국가스공사 국정감사에서 불거진 임직원들의 비리행태, 방만경영 등의 문제를 짚어봤다.

 

총괄자 처벌 배제 후 법무팀은 검찰과 ‘쎄쎄쎄’

 

● 수상한 자문료…조직적 비리 은폐 시도

2015년 9월 한국가스공사 캐나다 현지법인은 박석환 전 한국가스연맹 사무총장과 수상한 자문계약을 체결한다.

‘북미지역 자원개발과 LNG사업 환경 분석’ 보고서에 자문보고서 채택 없이 가스공사가 박 전 사무총장에게 지급한 자문료는 5,500만 원. 이는 3년이 지난 2018년 10월에서야 가스공사 내부감사로 드러난다.

이 같은 정황이 나타나자 공사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임종국 경영관리부사장은 감사실에 특정감사를 실시하도록 지시하는 한편, 국내 법무팀에는 이승훈 전 가스공사 사장을 검찰에 배임죄로 고발조치 하도록 했다. 이 전 사장은 자문보고서 등의 작성 없이 금액을 지급하도록 결정한 혐의를 받았다.

문제는 국감에서 경영관리부사장의 발 빠른 대처가 국회와 언론을 따돌리며 당시 지휘계통의 중심에 있던 임 부사장 본인의 비위행위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일어난 것이다.

공사 법무팀이 이 전 사장을 고발하자 해당 사건은 ‘수사 중인 사건’으로 밀봉됐고, 임 부사장이 지시했던 특감 또한 부당지시를 이행한 하위직 2명만 ‘징계’ 처분을 받았을 뿐 임 부사장 본인은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현재 임 부사장은 경영관리부사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감사실의 특감 결과 임 부사장의 부당지시는 확인됐지만, ‘상임이사 신분의 부사장은 예외’라는 판단을 내리고 어떤 처분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송갑석 의원에 따르면, 상임이사의 위반행위는 가스공사 감사규정에 따라 감사위원회 및 이사회에 보고해야 한다. 

 

▲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열린 한국가스공사,한국석유공사,한국광물자원공사,대한석탄공사,한국광해관리공단,강원랜드,한국석유관리원,한국가스기술공사,한국에너지공단,한국에너지재단,한국지역난방공사,한국전기안전공사,한국가스안전공사의 국감감사에 참석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2019.10.15.

● “항고 안할테니…불기소 처분 좀...”

수상한 것은 임 부사장만이 아니다. 그의 직속 부서인 국내 법무부장은 부당한 지시를 실질적으로 이행한 실무자들을 지휘했던 부사장을 정황상 의혹에서 제외하기 어려운데도 부사장의 부당업무 지시를 확인할 수 있는 2개의 문답서를 누락시켜 검찰에 제출했다.

게다가 이 전 사장을 배임죄로 고발한 법무부장이 오히려 이 전 사장의 혐의를 부인하고 혐의 입증을 방해하는 모습도 보였다. 심지어 내부감사 결과, 배임 혐의를 입증할 근거가 없다며 불기소 처분 시 항고하지 않겠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사건을 맡았던 서울동부지검은 지난 5월 29일 이 전 사장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피고의 자백, 혹은 다른 사람에 대한 증언을 하는 대가로 검사가 형량을 낮춰주는 경우는 있지만, 고발인이 항고를 안 할테니 불기소 처분을 해달라는 것은 역(逆) 플리바게닝에 가까운 모습이다. 이는 이 전 사장 및 임 부사장, 법무부장 간 모종의 거래가 있던 건 아니었는지 의심케 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가스공사 측은 “‘항고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공식적으로 확실하게 확인이 안 된 사항이라 확인해드릴 수 없다”고 답했다.

가스공사 고위직이 개입된 이 같은 조직적 은폐의혹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송갑석 의원에 의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송 의원은 “이 사건은 사장 부재중 발생한 임원비리를 전·현직 임직원이 결탁해 조직적으로 은폐한 전대미문의 지능적 배임행위”라며 “현 상임감사위원을 배제한 감사위원회에서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철저한 진상조사를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망사고는 산재로 ‘퉁’?…계속되는 안전불감증

 

 사람이 죽었는데 산재로 끝?

비리 문제와 별개로 가스공사는 사업 특성상 안전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가스공사가 운용하는 LNG생산기지 등은 국가중요시설로 분류되는 만큼 안전·보안을 최우선 사항으로 여겨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5년(2014~2019년 10월) 간 발생한 사고들은 화학물질 누출, 산소결핍, 설비 오동작, 화재 등 부주의로 인한 안전사고가 총 39건으로 나타났다. 29명이 부상당하고, 5명이 사망하는 인사사고로까지 이어졌다.

특히 2017년 4건, 2018년 7건이 발생했으며, 올해 10월을 기준으로 벌써 8건이 발생했다.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스공사 사장이 선임되지 않았던 지난해 9월부터 올해 7월 10개월 동안에도 안전사고가 6건이나 터졌고, 채희봉 현 가스공사 사장이 취임한 7월 10일 이후로만 따져도 화재, 질소호스 파열 등 3개월 간 벌써 4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지난달 30일 통영기지에서는 하루에만 세 차례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사고는 발생 원인도 중요하지만 사후 처리도 무시할 수 없다. 이미 일어난 일이야 어쩔 수 없다 쳐도 회사로서는 최소한 재발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스공사의 경우 ‘제 식구 감싸기’에서 비롯된 기강해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관작업 중 산소결핍 등 질식으로 사망한 사고에서 가스공사는 산업재해만 인정할 뿐 관리감독 소홀의 책임은 제대로 묻지 않았다. 이마저도 감봉 2개월, 견책 수준의 경징계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 지난 30일 오후 5시께 경남 통영시 광도면 한국가스공사 통영기지본부 LNG저장탱크 5호기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당국과 가스공사가 화재 진압을 하고 있다. 2019.10.01. (사진=경남소방본부 제공)
 

늑장대응, 사고은폐, 신고묵살…무색한 신임 사장 ‘안전강조’


 늑장대응에 사고 은폐, 주민요청은 묵살


다른 사고에서 공사의 대응은 더욱 가관이다. 사고 보고가 늦는 것은 물론이고, 은폐를 시도했다는 의혹까지 있다.

지난 1월 발생한 부곡산업단지 지반 침하 사고의 경우, 한 달 하고도 열흘이 지난 2월 18일에 산업부에 보고됐다. 지난달 30일 17시에 발생한 통영기지 탱크 화재도 날짜를 넘긴 10월 1일 00시 28분에 보고됐다.

지난 6월 있었던 사천지사 주배관 손상 사고는 더욱 심각하다. 산업부에는 아예 보고조차 없다가 열흘이 지나 국회 보고를 통해 알려진 것. 당시 사고는 주차장 공사를 위해 시험굴착 중 천공장비로 가스배관이 손상됐는데, 가스배관 매설 위치조차 몰랐다는 지적을 피하기 위해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 언론 보도에 따르면, 폭우로 대형 가스관로가 노출돼 주민들이 긴급조치를 요청했음에도 가스공사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를 묵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제안전도시’인 세종시에서는 고압가스 주 배관, 기름 탱크가 지하에 혼재 매설돼 있었음에도 공사는 주유소 설치 당사자 소관이라며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심지어 해당 배관은 세종시 일부 구간에 사유지를 불법 점용해 시공된 것으로 알려졌다.

‘천연가스의 안전, 안정적 공급을 통한 국민생활 편익 증진 및 복리향상’이라는 가스공사의 설립목적을 무색하게 만든 이 안전사고는 모두 채희봉 사장이 취임했던 지난 7월에 일어났다. 채 사장은 취임사에서 천연가스의 가격경쟁력 확보와 안전하고 안정적 공급을 위한 도입방식 개선, 장기운영 설비의 안전성 강화 등을 당면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연구개발 성공하고 사업화는 제로…이럴 거면 대체 왜 했나

 

● 내 맘대로 R&D…지침 없는 예산집행

 

가스공사의 총체적 부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체 연구개발(R&D) 진행 시 부정행위 방지를 위한 제재 규정 또한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상급기관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연간 약 7,500억 원 규모의 R&D 예산을 집행하는데, 엄격한 국가 R&D 제재규정을 통해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한다.

그러나 가스공사는 R&D 수행 시 사실상 제재 규정이 없을 뿐 아니라 산업부에서 마련한 고시 준용 지침 또한 없어 R&D 과정에서 부정행위가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환수 내지 참여 제한이 이뤄지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제재 규정의 부재는 국민 혈세로 진행되는 국가 R&D과정에서 위조·변조 등 부정한 방법 및 기타 국고 피해에 대해 변제하지 못함은 물론, 부정행위를 저지른 자가 다시 국가 R&D에 참여할 수 있는 ‘R&D 무법지대 조성’에 기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가스공사는 통화에서 “외부 기관이랑 과제를 할 때 협약서 안에 (제재 관련)여러 조건들이 들어가는데 그런 부분들이 미비하다는 것”이라며 “그런 부분들을 산업부에 준하도록 개정 하겠다”고 답했다. 

 

▲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열린 한국가스공사,한국석유공사,한국광물자원공사,대한석탄공사,한국광해관리공단,강원랜드,한국석유관리원,한국가스기술공사,한국에너지공단,한국에너지재단,한국지역난방공사,한국전기안전공사,한국가스안전공사의 국감감사에 참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19.10.15.

● R&D과제완료 100%, 사업화는 0%

실적만을 위한 R&D도 다수 드러났다. 2015~2017년까지 가스공사가 완료한 R&D는 총 39개로 100%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2017년 말 ‘성공적으로 R&D를 완료한’ 39개의 과제들이 3년여가 지난 2019년 10월 현재까지 특허에 출원하거나 등록된 과제는 오직 1건으로 나타났다. ‘사업화’에 성공한 사례는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이 같은 ‘내실 없는 성공’은 성공의 판단이 R&D의 완료를 기준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권칠승 의원은 “과제 완료가 사실상 성공 판정의 기준이 되는 현 R&D체제는 과제에 대한 판정 이후 특허출원과 등록이라는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게 만드는 방해요소”라며 “단기적 성공판정을 넘어 중장기적 기준 확립을 통한 R&D관리와 이에 따른 사업화 기준 확립 및 관리가 이뤄질 때 실질적 성공이 이뤄질 것”이라 전했다.

채희봉 가스공사 사장은 지난 15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감에서 “안전사고의 경우 사고조사 과정을 거쳐 개선할 대책을 강구하겠다”며 “책임자에 대한 징계문제도 흔들림 없이 추진해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지난 7월 10일 취임사에서도 그는 청렴·윤리의식 정착 및 부정부패 척결, 직원·조직역량 극대화를 통한 글로벌 수준의 전문성 확보 등을 주문한 바 있다.

비단 안전사고 뿐 아니라 직원들의 성희롱·성추행, 폭행, 음주운전 등 기강해이 및 경영윤리 등에 대해 공공기관으로서의 책임과 윤리의식은 매년 국감장에 꾸준히 등장하는 단골메뉴인 만큼 향후 채 사장이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개선해 나갈 것인지 관심이 집중된다.

<사진=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수영 기자 brumaire25s@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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