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그룹-라임 간 석연찮은 거래…박삼구 회장 책임론 ‘솔솔’

 

[스페셜경제=윤성균 기자]아시아나항공이 M&A시장 매물로 나온 지 1년이 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지난해 4월 15일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결정했으니 꼬박 1년이 지난 셈이다. ‘현금 부자’ 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이 인수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을 때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아시아나항공은 명실상부 국내 2위 국적항공사였고, 주인을 바꿔 다시 날아오를 일만 남은 것 같았다. 그런데 HDC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어째 지지부진하다.

물론 최대 복병은 코로나19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으로 아시아나항공뿐만 아니라 항공업계 전체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HDC현산 입장에서는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서둘러 인수를 마무리할 이유가 없다.

HDC현산의 인수 의지를 꺾는 요소는 또 있다. 바로 인수과정에서 드러난 라임자산운용 펀드 관련 손실이다. 아시아나항공과 함께 통매각된 에어부산이 라임 펀드에 투자했다가 170억원 넘게 손실을 봤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라임 부실로 인수가 불발되진 않겠지만, HDC현산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의 라임 부실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금호그룹과 라임의 관계에도 새삼 이목이 쏠렸다. 단순히 투자자와 펀드사 관계라 하기에는 석연찮은 거래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지부진한 아시아나항공 인수…HDC현산, 속도조절
꼭꼭 숨긴 자회사 라임부실…“실사단, 부실 몰랐나?”

2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기로 했던 HDC현산이 당초 이달 말로 예정됐던 아시아나항공 인수대금 납입을 사실상 연기했다. 유상증자와 회사채 발행 등 인수 대금 마련 작업도 진척이 없는 상태다. 이달 말 목표로 했던 아시아나항공 매각 일정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지지부진
표면적인 이유는 해외 기업결함 심사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HDC현산은 앞서 미국,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터키 등 해외 6개국에 기업결합을 신고한 바 있다. 최근 미국으로부터 아시아나 인수를 위한 기업결합 심사 승인을 받으면서 러시아의 승인만 남겨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기업결합 심사가 지연되면서 매각 일정이 어긋난 것은 사실이지만, 해외 기업결합 승인이 떨어진다고 해서 HDC현산이 곧바로 인수작업을 서두를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됐다. HDC현산은 지난 7일 아시아나항공에 1조4665억원을 제3자 배정방식으로 유상증자를 할 계획이었으나 기업결합 심사 일정이 연기되면서 일정을 미뤘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달 27일 정정공시를 통해 유상증자 납입일을 지난 7일에서 ‘거래종결의 선행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날로부터 10일이 경과한 날 또는 당사자들이 달리 합의하는 날’로 변경했다. 업계에서는 ‘당사자들이 달리 합의하는 날’이란 문구가 사실상 유상증자 일정의 무기한 연기를 뜻한다고 봤다. 코로나19 여파로 항공업계가 극심한 경영위기를 겪는 상황에서 HDC현산이 채권단 측과 인수조건 재협상에 나서거나, 최악의 경우 인수를 포기할 가능성마저 거론됐다.

이후 채권단이 적극적인 자금지원에 나섰고 정부도 항공업계에 대한 추가 지원책을 내놓으면서 HDC현산의 인수 포기설은 한풀 꺾였다. 인수는 예정대로 진행되겠지만, HDC현산의 신중모드는 지속될 전망이다. 2조5000억원에 달하는 인수자금도 여전히 부담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항공업계 실적이 급락하면서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상태도 꼼꼼히 들여다봐야 할 형편이다.  

 

▲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꼭꼭 숨겼던 자회사의 라임 부실
실제로 인수가 지연되는 과정에서 앞선 실사 과정에서는 발견 못했던 추가 부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지난달 말 아시아나항공의 일부 계열사가 라임자산운용 펀드에 투자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입은 사실이 드러났다. 라임자산운용은 다름 아닌 지난해 10월 환매 중단 사태를 일으켜 투자자들에게 1조6679억원의 피해를 입힌 헤지펀드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 자회사인 에어부산, 에어서울, 아시아나IDT, 아시아나에어포트, 아시아나개발, 금호속리산고속 등은 총 700억원가량을 라임 관련 펀드에 투자했다.

투자가 이뤄진 시기는 2017년부터 2019년으로, 공교롭게도 금호아시아나가 재무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와 맞물렸다. 계열사별로 에어부산이 20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아시아나개발이 130억원, 아시아나IDT와 아시아나에어포트가 120억원, 에어서울 100억원, 금호속리산고속이 30억원을 투자했다.

특히 에어부산은 2018년 라임 펀드에 200억원을 처음 투자한 이후 지난해 6월에도 비슷한 금액을 추가로 투자했다. 그로부터 석 달 후 라임펀드 환매 중단 사태를 맞으면서 171억원의 투자손실을 입었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작년 5월께 해당 펀드가 만료돼 대부분 회사는 수익을 내고 환매했다”며 “에어부산만 6월에 재투자하는 바람에 손실을 입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라임 손실도 아시아나항공 자회사까지 통매각한 HDC현산이 떠안는다.

그런데 에어부산의 라임펀드 투자시기를 살펴보면 수상한 대목이 있다. 지난해 6월이면 한창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 등 절차가 진행되던 시기인데 이때 200억원의 자금이 펀드에 흘러 들어갔다는 말이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올해 3월 2019년 감사보고서로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난 것도 의아하다. HDC현산이 매각 주체였던 금호 측의 불투명한 정보 제공과 추가 부실 가능성에 불만을 가질 만하다.

금호그룹 사정에 밝은 한 재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측이 실사 과정에서 계열사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고 들었다”며 “계열사에 대한 자료가 부족해서 실사단은 라임 부실에 대해서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호그룹과 라임자산운용의 내밀했던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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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열사 통한 불법 투자 의혹
금호그룹과 라임 간 석연찮은 관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금호그룹이 라임 펀드를 통해 계열사 돈 수백억원을 우회 방식으로 아시아나항공에 몰아줬다는 의혹도 제기됐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이 지난해 3월 발행한 850억원 규모의 무보증 사모영구채에 포트코리아자산운용이 운용하는 사모펀드 ‘런앤히트 6호’에서 투자한 총 600억원의 자금이 포함됐다. 문제는 이 600억원의 투자금 중 절반을 금호 계열사가 출자했다는 점이다. 런앤히트 6호는 라임자산운용이 300억원, 에어부산과 아시아나IDT, 케이에프 등이 합계 300억원을 투자했다.

자회사가 모회사의 영구채를 인수한 것은 상법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 상법에서는 상장사가 주요 주주나 그 특수관계인을 위한 대여나 증권 매입 등 신용공여를 금하고 있다. 또 해당 펀드가 전문 사모 운용사의 이른바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펀드’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OEM 펀드는 자산운용사가 은행과 증권사 등 펀드 판매사에서 명령·지시·요청 등을 받아 만드는 펀드로 자본시장법상 금지돼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계열사를 동원해서 라임자산에 투자하고, 마치 투자 행위에 대한 대가인 것처럼 펀드를 조성해 다시 자금이 아시아나항공으로 흘러 들어갔다”며 “이것은 신종 부당 지원 행위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금호그룹 관계자는 “펀드 자금이 아시아나항공 영구채에 투자된 것은 투자사의 결정이지 자회사들의 의사와는 무관하다”며 “투자시점에는 알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처음부터 아시아나항공에 투자할 목적으로 OEM 펀드로 조성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사실무근”이라고 답했다.

금호와 라임의 남다른 인연
아시아나항공 자회사들은 일사불란하게 라임펀드 투자에 뛰어든 이유는 뭘까. 업계는 금호그룹과 라임의 관계에 주목한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 회장과 라임의 밀접한 관계로 봐도 무방하다.

사연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 회장은 2012년 매각한 금호그룹의 모태기업인 금호고속을 되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금호 재건은 박 회장의 의지였다. 금호고속을 인수하기 위한 자금 약 1500억원에서 절반가량을 라임에서 사모펀드로 설정해서 조달했다. 그 결과 금호그룹은 4735억원에 금호고속을 인수할 수 있었다.

 

▲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당시 라임이 금호고속 인수 딜에 참여한 것은 투자업계에서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주요 언론은 라임이 헤지펀드의 새지평을 열었다고까지 평했다.

금호고속 인수 참여는 라임의 대표적인 투자 성공 사례로 꼽혔고, 라임은 이를 발판으로 이듬해 운용자산이 1조5000억원을 돌파할 정도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라임은 과거에 금호고속 인수전에 참여해 성공적일 딜을 이끈 것을 굉장한 홍보수단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자회사들이 라임펀드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은 금호산업 인수가 마무리되는 2017년~2018년경이다. 아시아나항공 자회사들의 펀드 투자가 금호고속을 되찾도록 도와준 라임에 대한 ‘보은성’ 투자가 아니었겠느냐는 것이 업계 주된 반응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의 비상장 자회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라임에 투자했다. 그 얘기는 각 사의 투자 판단이 아니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룹 차원에서 투자 지시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라임에 투자한 자회사의 면면을 살펴보면 상장사인 에어부산과 아시아나IDT를 제외하면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만이 펀드 투자에 참여했다는 점도 공교롭다.

금호그룹 관계자는 “자회사들이 1차 투자 이후 수익이 나서 2차 투자로 이어졌을 뿐 그룹에서 투자 지시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금호고속 인수 이후 라임과의 신뢰관계가 투자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금호고속 인수와 라임 펀드 투자는 별개 사안이다”고 답했다.

책임 외면하는 박삼구 회장
아시아나항공 자회사들이 모회사의 영구채에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투자했고, 그 과정에서 손실을 봤다. 당시 그룹을 진두지휘했던 박삼구 전 회장의 책임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의 부실경영을 책임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박 전 회장은 거액의 퇴직금을 챙겨가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박 전 회장은 작년 아시아나항공에서만 급여 1억6천800만원과 기타 근로소득 11억9천200만원, 퇴직금 20억7천900만원 등 총 34억3천900만원을 받아갔다. 앞서 박 전 회장은 2017년 금호타이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날 때도 고액의 퇴직금을 챙겨 논란이 됐다. 당시 박 전 회장은 9억1천600만원을 챙겼다. 논란은 반복됐지만 태도에는 변화가 없다.

이러는 가운데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에 1조7000억원 규모의 한도대출을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와는 별도로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조성해 항공업계 등 기간산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사태라는 전례없는 위기 때문이라지만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진제공=뉴시스)

 

스페셜경제 / 윤성균 기자 friendtolife@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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