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실사 요구에 “이해할 수 없다” 거부
채권단 관리 아래 경영 안정화 후 매각 검토
“다른 대기업도 열어놓겠다” 새 인수주체 모색도

▲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사진=산업은행)

 

[스페셜 경제=변윤재 기자]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의 아시아나 인수합병(M&A)가 노딜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은 현산 측이 요구한 아시아나 재실사 요구를 거부하고 계약 무산의 책임은 현산에 있다고 분명히 했다.

 

채권단 주도 경영관리 마련다른 대기업 그룹도 열어놓겠다

 

3일 최대현 산업은행 부행장은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열어 재실사 요청은 과도한 수준이고 기본적으로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판단이라며 그동안 실무에서 거래 종결을 위해 지속해서 인터뷰를 요청했음에도 응하지 않다가 거래 종료 당일에 12주간 재실사를, 그것도 서면으로 요청한 것은 인수 진정성은 없으면서 단지 거래를 종결시키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도 “7주 동안 엄밀한 실사를 한 상황에서 변화가 있는 부분만 점검하면 되는데 자꾸 재실사를 요구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통상적인 M&A 절차에서 전례가 없을 정도로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산은에 따르면, 현산은 7주 간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실사를 벌이고 6개월 동안 인수단을 아시아나항공에 파견해 인수 준비를 해왔다. 이같은 상황에서 재실사를 요구한 배경에 산은은 의구심을 드러냈다. 이와 관련, 향후 계약 해지 소송을 염두한 명분쌓기일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견해다.

 

이 회장은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을 감안해 최대한 협조해 왔지만, 더 이상 결정을 미룰 수 없는 결단의 시점이 오고 있다모든 당사자가 거래 종결 시점에 맞춰 결단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압박했다.

 

최 부행장은 현산이 인수 의사가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현산이 진정으로 인수 의사가 있다면 시장이 신회할 수 있는 방안이 제시됐어야 한다일부 증자를 책임있게 이행하던지 계약금 추가 납입이라든지 책임있는 조치를 통해서 시장의 신뢰를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은 사실상 노딜의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수많은 M&A를 경험했지만 당사자 면담 자체가 조건인 경우는 처음이라며 현산 측이 계속 기본적인 대면 협상에도 응하지 않고 인수 진정성에 대한 행위를 보이지 않는다면 무산이 불가피하다이라고 한 최 부행장의 발언은 이를 뒷받침한다.

 

산은은 계약 무산에 따른 플랜B도 준비하고 있다. 최 부행장은 아시아나항공 영업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유동성 지원이나 영구채 주식전환 등 채권단 주도 경영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경영안정 후 LCC(저비용항공사) 분리 매각 등 구체적인 관리방안은 시장상황을 봐가면서 하겠다고 밝혔다.

 

채권단이 현재 보유중인 8000억원 상당의 아시아나항공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지분율 36.99%로 최대주주가 된다. 이후 채권단 관리 아래 뒀다가 항공업이 회복세를 보이면 해당 주식을 처분하는 방식으로 매각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 경영 정상화를 위한 전폭적인 지원도 하겠다고 밝혔다. 최 부행장은 아시아나는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 대상 요건을 충족한다기금의 지원여부 방식은 심의회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 역시 지금의 먹구름이 걷히면 항공산업의 미래가 어둡지 않다고 본다아시아나는 훌륭한 기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정상화가 가능한 기업이기 때문에 현산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채권단은 아시아나의 경영정상화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아시아나 국유화에 대해서는 산은이 출자전환을 통해 아시아나의 일부 지분을 보유하는 것을 국유화로 표현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신용도, 다른 영업사항 등에 영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산은의 관리 하에 둔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견지했다.

 

특히 새로운 인수 주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아시아나 경영이 안정화되고 시장여건이 허락하면 재매각을 빨리 추진해 제대로 된 인수주체가 나타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대형 사모투자펀드(PEF)는 투자 적격성 여부에 대한 정부의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다른 대기업 그룹도 열어놓고 진행하겠다고 했다. 새로운 인수 주체로 다른 대기업 그룹을 거론한 것은 아시아나 항공 인수에 관심을 보였던 SK그룹, 한화그룹, CJ그룹 등을 염두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계약 무산 책임은 현산에못박아

 

산은은 계약 무산을 염두에 두고 법적 공방을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 부행장은 매각이 무산되면 현산이나 금호나 상대방 귀책을 주장하고 있는 상태라 계약금 반환 소송 등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계약 무산의 책임은 현산에 있다고 분명히 했다. 그는 금호산업과 산업은행 측은 하등 잘못한 게 없다계약 무산의 모든 법적 책임은 현산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그동안 여러 번의 공문 내용이나 보도자료를 통한 현산의 주장은 상당 부분 근거가 없었고 악의적으로 왜곡된 측면도 있었다금호산업과 채권단은 신의성실 원칙에 입각해 최선을 다했고 계약이 무산될 위험과 관련해선 현산 측이 제공한 원인 때문 아닌가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계약 무산 책임이 있는 현산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본인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도 산은은 가능성을 열어뒀다. 인수 여부 검토를 위한 절차가 아니라 인수를 전제로 한 재실사는 논의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최 부행장은 인수가 전제된다면 인수 후 영업환경 분석 등 대응책 마련을 위한 제한된 범위 내에서 (재실사) 논의가 가능하다인수 확정을 전제로 거래종결 확정 논의를 한다면 이에 적극 응할 것이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 회장 역시 미국 몽고메리워드와 시어스 사가 10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상이한 경영 판단으로 희비가 엇갈렸던 사례를 들며 현산의 결단을 촉구했다. 공황을 우려한 몽고메리사가 투자를 줄인 반면, 시어스사는 오히려 사업을 확장해 몽고메리사는 쇠락했지만 시어스사는 전세계 리테일시장을 평정했다는 설명이다. 현산이 항공업의 가능성을 봤던 경영적 판단을 믿고 적극적 투자에 나서달라는 요청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그는 현산도 금호도 계약의 양 당사자로서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 열어놓고 진중하게 마지막 협의를 해주기를 당부한다현산이 심사숙고해서 협의를 요청할 게 있다면 저희도 성실히 임하겠다고 여지를 남겼다.

 

이로써 공은 현산으로 넘어갔다.

 

현산-미래에셋 컨소시엄은 지난해 1227일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30.77%)3228억원에 매입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고, 21771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후 금호산업과 현산은 인수합병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양측은 거래종결 지연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미루면서도 대화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2500억원의 계약금 반환 소송을 대비한 명분쌓기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호산업은 현산 측에 지난달 14일 인수 거래를 마무리하자는 내용 증명을 발송했다. 현산은 3개월의 재실사 기간을 추가로 요구했지만, 금호산업과 채권단은 더 이상의 기간 연장은 불가하다며 29일 계약해제 내용증명을 다시 보냈다. 이에 대해 현산은 선행조건 충족 의무는 이행하지 않고 당사의 재실사 요구를 묵살했다8월 중 재실사를 재차 촉구했다.

 

현산은 산은의 재실사 거부에 대해 아직까지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거래종결시한인 12일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만큼, 현산이 인수합병에 전향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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