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업원 곽은경 기업문화실장

[자유경제원 곽은경 기업문화실장]이 나라는 한때 세계 4위의 경제부국이었다. 풍부한 석유 덕분에 1950년 1인당 국민소득이 7424달러로 미국, 스위스, 뉴질랜드 다음으로 잘사는 나라였다. 아름다운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작은 베네치아’라 이름 붙여진, 한마디로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1970~1980년대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으며, 일자리가 넘쳐나고, 사회안전망이 탄탄해 이웃나라에서 이민자들이 몰려들었다. 맥주와 위스키 소비량이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경제적 풍요와 여유를 과시하기도 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2019년 현재 이 나라 국민의 80%가 빈곤층에 속하며, 94%가 전기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연 7000번 이상 정전이 발생해 통신, 교통 서비스 이용이 불가능해졌고, 공장과 병원이 문을 닫았다. 시민들은 식수와 식품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정치불안,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정전까지 반복된 결과, 국민의 20%가 난민이 되어 주변국을 떠돌게 됐으며 지금도 매일 6만 명이 국경을 등지는 상황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2020년이면 세계 최대 난민 수출국인 시리아를 앞지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바로 베네수엘라 이야기다. 세계 1위의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베네수엘라에서 정전으로 나라가 마비되었다는 소식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석유 뿐 아니라 금, 다이아몬드, 가스, 알루미늄 등의 천연자원도 풍부한 나라에서 전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국가가 휘발유, 생필품은 물론 토지까지 무상으로 분배했던 베네수엘라이기에 더욱 놀랍다. 한 때 전 세계인들이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며 베네수엘라 국민을 부러워했지만, 이제는 모두 옛말이다. 전력 부족으로 정전은 반복되고 복구 작업도 원활하지 않아 일주일 이상을 암흑 속에서 지내는 그들을 애처로워 할 뿐이다.

풍부한 석유자원에도 전력부족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베네수엘라는 대부분의 전력을 수력발전을 이용해 생산한다. 석유수출량을 늘리기 위해 석유를 이용하는 화력발전의 비중을 줄인 결과다. 넘쳐나는 석유를 두고 불규칙한 강수량에 의존하려던 계획이 전력 수급 불안정을 초래한 것이다. 2009년 이후 가뭄으로 발전댐의 수위가 내려가는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했지만, 베네수엘라 정부는 수력발전에 의존하는 방침을 고수했다. 대신 ‘하루 4시간 단전’, 전력배급제 등의 임시방편만 내놓아 문제를 키웠다.

전력부족 사태의 근본원인은 전임 대통령인 우고 차베스의 에너지산업 국유화에서부터 시작됐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차베스는 1999년 에너지산업을 국유화하고, 석유산업에 투자하고 있던 외국 기업을 내쫒았다. 석유에서 나오는 모든 수입을 독점하기 위함이었다. 정권에 반대하는 경영진과 전문인력을 해고하고 측근들을 고용했다. 2007년에는 서민들에게 전기를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며 전력기업마저 국유화했다.

에너지 기업을 국영화한 결과는 참혹했다. 에너지 기업들은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었으며, 방만한 경영으로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정부가 막대한 오일머니를 포퓰리즘 정책의 재원으로 사용하면서, 에너지산업에 대한 투자가 불가능해진 것은 치명적이었다. 과거 이웃 국가인 콜롬비아, 브라질에 전력을 수출할 정도로 생산능력이 뛰어났던 전력회사들이 국유화 이후에는 국내 수요도 충당하지 못할 정도로 부실해졌다. 

 

전력생산의 75%를 담당하고 있는 엘 구리 수력발전소는 관리와 투자부족으로 노후화된 시설을 교체하지 못해 수시로 고장을 일으키고 있다. 수력발전에 문제가 있다면 화력발전으로 부족분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제대로 된 정제시설이 없어 원유가 쌓여있지만 이를 활용할 방법이 없다.

베네수엘라의 정전사태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에너지를 시장가치에 따라 거래되는 재화로 보지 않고 정권의 통치도구로 사용한 폐해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와 전력도 시장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

 

스페셜경제 / 곽은경 speconomy@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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