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무관 갑이면 철퇴 을이면 면죄부 프레임 도구 전락한 ‘갑-을 구도’

[스페셜경제 = 김은배 기자]“갑질보다 무서운 을질”이라는 키워드가 요즘 유행이다. 갑과 을이라는 구도는 태생적인 의미 자체가 갑은 악이고 을은 선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그러다보니 갑은 항상 규탄의 대상이 되면서 ‘갑은 뭘 해도 나쁜 놈이고 을은 뭘 해도 피해자’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박혔다.

문제는 이같은 갑의 약점을 알게 된 일부 을들이 역으로 이를 악용해 갑에게 역으로 갑질을 하는 이른바 ‘을질’이라는 신종 갑질행태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특히 잘못을 저지른 을들이 자신들은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법의 준엄한 심판에도 면죄부를 받아야 한다고 호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대자동차의 2차 하도급업체인 태광공업의 을질이 대표적인 예다. 태광공업의 손영태(전 회장) 부자는 1,2심에서 유죄선고를 받고 대법원과 최종심에서도 유죄가 확정됐다.

손 부자는 재정상황이 악화되자 1차 하도급업체인 서연이화 등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자 부품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위협을 통해 서연이화에게 회사 인수를 요구했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서연이화가 부품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신너통, 야구방망이 등을 비치하고 사냥용칼을 휴대하는 것은 물론, 실제 방화를 저질러 위협을 하면서 서연이화 대표가 무릎을 꿇고 빌게 만들기도 했다.

문제는 본청은 무조건 적인 갑으로 규정하고 무너뜨려야 할 대상으로 보는 일부 진보 정치권과 언론들이 태광공업이 서연이화에 자금 지원을 요청한 사실 등 불리한 정황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시너통과 야구방망이는 정당방어수단으로 사냥용칼은 위협용이 아닌 자해용 도구로 묘사’한 손 부자 측의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은 강조하며 검찰과 법원의 판단을 비난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언론은 손 부자가 법정에서 함께 수갑을 차고 포승에 묶여 끌려가는 장면이나, 손영태 전 회장이 고령이라는 점, 손 전 회장 부인이 회견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장면 등을 부각시켜 실제적인 사실관계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장면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이는 등 프레임 싸움에만 집중하는 행태를 보이기까지 했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특정 기업을 공격하기 위해 약자인 ‘을’을 연기하는 ‘을질’과 이를 프레임 전술로만 활용하는 일부 언론에 대해 조명해봤다.

 

포승줄·눈물·옥중편지…애처로운 장면만들기 집중
사실관계 누락하고 을 입장만…법원 판결도 압박

 

▲이미지출처=한겨레 캡처
공갈 혐의로 기소됐으나 갑질 피해자라며 무죄를 호소해 논란이 됐던 자동차 부품사 태광공업 사건이 10일 오전 대법원에서 상고 기각됐다.

앞서 대구고법에서 지난 1월 태광공업의 손영태 전 회장과 손정우 전 사장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공갈) 혐의에 대해 선고한 징역 2년6개월과 4년의 실형이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된 것이다.

피의자 손영태, 손정우 부자는 그간 영세한 부품사의 납품 중단 행위를 공갈죄로 처벌하는 것은 과하다고 주장해 왔으며, 일부 정치권과 진보언론에서도 사법당국의 판단이 잘못됐다며 태광공업 사건을 하도급 거래의 대표적 갑질 사례라고 주장하며 여론화한 바 있다.

특히 <한겨레> 등은 손 부자가 하도급 업체라는 점을 강조해 사회적 약자인 ‘을’로 규정하고 부자가 나란히 포승줄에 묶여 법원에 출두 하는 장면이나, 손정우 전 사장이 자신의 아버지의 선처를 호소하는 옥중편지나, 손영태 전 회장의 아내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 등을 부각해 미화하는 등 사실관계 여부보다 감정을 자극하는 프레임 만들기에 집중했다.

특히 해당신문은 손 부자를 기소한 검찰은 물론 1, 2심에서 유죄로 판결한 법원까지 국가형벌권을 과잉 적용한 것 아니냐는 주장을 펼쳤다. 아울러 공갈죄의 피해 당사자인 서연이화는 부도덕한 갑질 기업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다만, 이같은 여론전에도 법원의 판단은 변하지 않았다. 1심, 2심 모두 유죄를 선고한 데 이어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도 실형을 확정한 것.

정치권에서 약자의 이미지를 활용한 기득권 타파라는 정치적 명분에 집중했지만 사건의 사실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대기업의 갑질 사례로 ‘침소봉대’하고 있다는 서연이화 측 의 항변이 인정된 결과로 보인다. 아울러 법조계 등에서는 판결문 등을 볼 때 사실상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안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법원 판결문 손 부자 ‘을질’ 인정

특히 법원의 2심 판결문 양형 사유는 태광공업 전 경영진의 부도덕함을 상세하게 드러내고 있다.

태광 전 경영진인 손 부자는 재정 상황이 악화되자 서연이화 등 1차사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으나, 태광의 높은 부채비율 등으로 자금 지원을 거절당했다. 태광 측은 이에 부품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서연이화에 통보하고 회사를 인수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2차례에 걸쳐 서연이화와 합의서를 작성하고 경영권을 넘겼다.

이후 서연이화는 본 경영권 인수계약이 협박에 의한 것이라며 무효임을 선언하고, 피고인을 공갈혐의로 형사고소했는 데 이 배경에는 손 부자가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결품사고가 날 수 있다는 식의 압박을 했다는 정황이 있다.

법원은 적법하게 채택해 조사한 증거들에 의해 부품공급 중단 및 금형 이관 거부 등의 강한 의사 표시를 하며 요구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결품사고를 낼 것처럼 협박해 50억원을 갈취하고, 피고인의 463억 상당의 연대보증채무를 서연이화가 면책적으로 인수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재산상 이득을 취한 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협박 행위 등의 구체적 사실들이 적시하며 양형 사유를 설명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인 손정우는 서연이화에 공급 중단을 통보한 후 서연이화 소유인 금형의 반출을 막기 위해 사무실, 공장 등의 출입로를 봉쇄하고, 금형 옆에 신나통을 뒀으며, 태광 건물에 ‘죽으라면 죽어 드리겠습니다’라는 문구가 기재된 플래카드를 걸어놨다.

아울러 서연이화 대표가 문제 해결 위해 사무실을 찾아갔을 당시, 소파 옆 테이블에 신나통과 야구방망이가 있었고, 피고인 손정우는 검은 상복을 입고, 왼쪽 가슴에 사냥용 칼을 차고 있었다.

또한 손 부자는 “태광 인수에 관한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부품공급을 중단하여 결품 내겠고, 금형을 파괴하겠다”고 직접적인 압박을 하기도 하고, 직원을 시켜 자사 건물 옥상에 방화를 하는 등의 위협행위를 하기도 했다.

일부 언론에서 ‘갑’으료 묫된 서연이화 대표는 이에 자사의 파탄 상태를 막기 위해 피고인을 직접 만나 무릎을 꿇고 ‘제발 부품을 공급해 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명목을 바꿔가며 점차적으로 더 많은 금원 지급을 요구하는 피고인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피고인 손정우는 수차례에 걸쳐 서연이화 측에 합의 날인을 요구했는데, 요구한 대금 및 명목은 그때 그때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위로금 차원의 30억원이었다가, 주식 양도대금 명목으로 30억원을 지급하라고 합의서를 변경했고, 이후 1차 합의서에는 주식양도대금 30억과 합의금 20억원을 합해 50억원을 지급하는 내용이 기재됐다. 2차 합의서에는 주식 매매대금 50억원과 463억원 상당의 연대보증채무를 서연이화가 면책적으로 인수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포함됐다.

피고인 손정우가 결품을 빌미로 서연이화 측에 협박 메시지를 보내 위협한 정황도 포착됐다. 공개된 메시지에 따르면, 피고인은 서연이화 경영진에게 “내가 아반떼 조립 라인 부순다, 너 내일 결품이라매’라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고, 다른 1차 협력사의 임원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캡처해 보냈는데, 여기에는 ‘자근자근 씹어주겠다’는 문구가 기재됐다.

아울러 피고인 손영태는 “내가 50억 중 세금 3억원을 납부하고, 개인 빚 변제 등으로 일부 사용했으며, 30억원 정도 보관하고 있다”고 진술했으며, 피고인 손정우 또한 “계좌에 입금된 돈을 피고인 손영태가 직접 은행에 가서 인출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기도 했다.

또, 한 증인은 “피고인들이 이 사건 50억원 중 일부라도 직원이나 채권자, 업체를 위해서 사용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서연이화는 현재 합의서 계약 무효 확인 및 50억원의 반환 등을 구한 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피고인들이 50억원을 모두 인출해 현금화함에 따라 가압류 등의 보전조치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미지출처=레디앙 캡처
“태광 측도 피해있지만 범행의 합리화는 될 수 없어”


법원은 일부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1차 협력사 서연이화의 불합리한 단가인하 정책 등 이른바 갑질로 인한 태광 측의 피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다만, 법원은 그 피해를 어느 정도 당한 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이 같은 범행을 합리화할 수 있는 사정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판결문을 보면, 태광의 재정 악화는 산업의 구조적 문제와 거래 관행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은 배제할 수 없으나, 부품 공급 중단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1차사(서연이화)의 약점을 이용해, 험악한 언동을 하며, 피해회사를 궁박한 상황으로 내몰았다고 적시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피고인이 해당 사건 범행을 전면 부인하고, 죄책을 피하려는 데에만 급급한 태도를 보이고 있고, 오랫동안 서연이화로부터 갑질 피해를 당했고, 서연이화의 농간으로 경영권까지 빼앗긴 데다가 공갈, 협박으로 고소까지 당했다며 서연이화를 부도덕한 갑질 기업이라며 시종일관 비난하고 원망 섞인 감정을 표출하고 있어, 개전의 정을 찾아볼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피고인들이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법인회생을 신청함으로써 채권자들의 강제집행에서 벗어나고, 회생계획 인가를 통해 태광을 운영하는 등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었다고 보이는 등 힘들더라도 법질서 내에서 합법적이고 정당한 방법과 절차를 통해 피해를 극복하도록 노력했어야 한다고 적시했다.

이같이 법원은 공갈죄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고, 범행 전후 현금 인출 및 사적 사용 등의 사유를 들어 유죄로 판단했다.

사회적 약자라는 지위가 모든 행위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으며, 의도나 목적에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더라고 수단의 위법함을 갈음할 수 없다는 보편적 원칙이 적용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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