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현산에 아시아나항공 매각 계약해지 통보할듯
코로나 위기에 아시아나 부채비율 2291% 치솟아
세계 항공사, 항공화물 경쟁…깜짝 실적 ‘불투명’
공정위 고발도 부담…예상보다 큰 기회비용에 포기

▲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지난해 11월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현대산업개발 본사 대회의실에서 아시아나 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시작은 강렬했다. ‘경제가 어려운데 괜찮겠느냐는 걱정에도 오히려 기회라고 호언장담했다. 표현도 화끈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위한 입찰에서 경쟁사인 애경그룹보다 무려 1조원이 넘는 금액을 제시했다. 그러나 열정은 4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감당할 수 없는 부채 앞에 결국 이별을 택했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현산) 회장 이야기다.

 

현산과 아시아나항공의 M&A가 무산될 전망이다. 아시아나항공의 대주주인 금호산업과 KD산업은행(산은) 등 채권단은 이번주 중 계약 해지를 공식 통보할 예정이다.

 

앞서 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의사를 밝히면서도 12주 재실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매각 계약을 체결할 때와 달리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재실사가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셈이다. 이동걸 산은 회장이 재실사는 없다고 못 박은 만큼, 인수 포기 의사를 밝힌 것과 다름없다.

 

산은은 현산을 협상테이블로 다시 끌어내기 위해 채찍과 당근을 병행했다. 러시아에서의 기업결합심사가 마무리된 7월 이후 계약 해지를 언급하며 현산의 결단을 촉구했고, 이동걸 회장이 공개적으로 계약 무산의 책임은 현산에 있다고 압박했다. 지난달 26일 가까스로 성사된 대면 협상에서는 이 회장이 정몽규 산은 회장에게 인수가를 15000억원으로 낮춰 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같은 산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산은 요지부동이었다. 12주 재실사 입장을 고집하면서 매각 협상은 결렬됐다.

 

당초 정몽규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위한 입찰에서 경쟁사인 애경그룹보다 1조 가량 높은 금액을 과감하게 베팅했고, 대상자로 선정되자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자청했을 정도다. 이후 현산을 모빌리티 그룹으로 한 단계 도약시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현산은 해외 플랜트와 국내 건축·토목사업을 병행하는 여타 건설사와 다르게 국내 주택건설 위주로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어 건설사 치고 높은 10% 중반대의 영업이익율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부동산 정책과 정부 규제, 경기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재무구조나 자금 흐름이 안정적이지 않다. 이 때문에 정 회장은 사업 영역을 넓혀왔다. 2015년 신라호텔과 손잡고 면세사업에 뛰어들며 유통분야에 진출했고, 지난해엔 한솔오크밸리 운영사인 한솔개발 경영권을 인수하며 리조트사업에도 뛰어들었다. 부동산114를 인수하며 프롭테크 시장에도 손을 뻗쳤다. 부동산부터 유통, 레저까지 아우르며 사업영역을 확장한 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그룹에 매우 큰 시너지를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특히 정 회장에게 모빌리티 사업의 의미가 남달랐던 영향도 컸다. 선친인 고 정세영 회장은 1974년 최초의 국산 모델 자동차인 포니를 만든 이후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를 새로 쓴 장본인이다. 정 회장 역시 현대차에서 경영수업을 받으며 자동차 사업에 대한 애착을 키웠지만, 1999년 정주영 명얘회장이 큰 아들인 정몽구 회장에게 현대차 경영권을 승계하자 선친과 함꼐 현대산업개발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정 회장에게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신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대를 이은 모빌리티 사업에 대한 갈망을 해소하는 기회였던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국가 기간산업인 항공산업이 그룹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부합한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인수라면서 경제가 좋지 않은데 인수를 추진하는 것을 걱정하지만 오히려 경제가 어려울 때 좋은 기업을 인수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상황이 급변하자 정 회장의 의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3분기 808%에서 올 2분기엔 2291%로 재무건전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그나마도 무려 6280%까지 치솟았던 부채비율을 줄이기 위해 관리비용을 줄이고 채권단으로부터 영구채 인수방식으로 3000억원을 긴급 수혈받은 덕이었다. 자본짐식률도 지난해 말 18.62%에서 49.8%로 급격히 증가했다.

 

현 상태에선 현산이 21772억원의 유상증자에 참여한다 해도 부채비율이 500%를 넘어간다.

 

상반기 영업이익(2846억원)7배에 달하는 17000억원을 더 투입해야 부채비율을 간신히 300%대로 떨어뜨릴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1년 안에 갚아야 할 단기성 차입금도 27000억원이나 된다.

 

항공업 시장의 불확실성 또한 단기간 내에 개선될 여지가 요원하다. 항공업계는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여객 수요가 예전만큼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다 2분기 아시아나항공을 버티게 해 준 항공화물 운임 비용은 하락세다. 4일 홍콩에서 발표하는 TAC 항공운임지수에 따르면 홍콩~북미 노선 기준 지난달 평균 화물운임은 5.5달러로 5(7.73달러)보다 29% 낮아졌. 홍콩~유럽 노선 평균 화물운임도 3.21달러로, 5(5.88달러) 대비 45% 하락했다. 이런 가운데 크리스마스 성수기 등을 노리고 미국 아메리카항공, 에미레이트항공 등 세계 항공사들이 화물운송에 뛰어들면서 화물 특수를 누리기 어려워졌다.

 

자금력이 뒷받침된다면, 항공업 불황기를 견딜수도 있다. 하지만 현산의 자금 사정도 썩 좋은 상황은 아니다. 현산은 상반기 매출액 19635억원, 영업이익 2846억원, 당기순이익 2060억원을 기록했다. 건설경기 침체로 인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 매출은 15.73%, 영업이익은 4.27%, 당기순이익은 12.82% 줄어들었다. 반면 차입금은 지난해 말 586억원에서 상반기 15963억원으로 172.27% 급증했다. 부채비율도 112.4%로 뛰었다.

 

여기에 아시아나항공의 대외 이미지가 타격을 입은 것도 부담이 됐다. 공정위는 최근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사업 독점권을 이용해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금호고속에 조직적으로 지원한 혐의로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을 검찰에 고발하고 3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결국 반기 평균 2000억원의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내는 현산을 굳이 유동성 위기로 몰아가면서까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고집하기엔 기회비용이 너쿠 큰 것이다. 현산이 지난 4월 이후 보도자료와 내용증명 등 서면으로만 소통했던 것도 이처럼 상황이 급변한 데 따른 부담감이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현금장사인데다 수십년 간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로 아시아나항공이 매력적으로 보였겠지만, 항공업은 경쟁은 치열한데 마진은 박한 업종이라며 항공업에 대해 이해도가 높지 않았던 정 회장이 코로나19 때문에 항공업의 한계가 선명하게 드러나자 생각을 바꾼 것 같다이라고 말했다.

 

모빌리티 그룹에 대한 꿈은 일장춘몽으로 끝났지만, 정 회장에겐 뒷수습이 남았다. 반기 영업이익과 맞먹는 2500억원의 계약금 회수다. 정 회장이 ‘12주 재실사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것도 계약 무산의 책임을 금호산업과 채권단에 돌리기 위한 명분쌓기였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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