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김다정 기자]도무지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은 한·일 갈등이 이제 항공안전도 위협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행사하고 있는 ‘제주남단 항공회랑’ 관제권 환수를 위해 정부가 중국 및 일본과 협의를 진행 중인 가운데 일본과의 협의가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항공회랑은 항공기가 다니는 길을 말하는데 특정 고도로만 비행이 가능한 구역이다. 항로는 고도를 바꿀 수 있지만 항공회랑은 바꾸면 안 된다.

제주남단 항공회랑은 한국이 관리하는 하늘이지만, 과거 1983년 당시에는 중국과 한국의 외교 관계가 단절돼 있어 항공 관제 정보를 공유할 수 없다는 이유로 관제권을 확보하지 못했다.

항공동경 125도를 기준으로 서쪽은 중국 상하이 관제소가, 동쪽은 일본 후쿠오카 관제소가 담당한다.

1983년 당시 한국의 국적 항공사는 대한항공밖에 없었고, 제주남단은 사용하지 않는 항로였다. 한국 정부는 중재안을 받아들여 관제 업무를 중국과 일본에 양도했었다.

당시에는 한국이 제주남단 항로를 사용하지 않아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이후 한국-중국·동남아 항공편이 증가하면서 이 하늘은 한·중·일 3국의 ‘관제권’이 얽혀 있어 항공기 충돌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6월 30일 제주를 떠나 중국 상하이로 향하던 중 중국 길상항공 비행기가 근접 비행하는 중국 동방항공 여객기를 피해 고도를 급히 낮추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7월에는 미국 페덱스 항공기가 무단으로 고도를 높여 한국의 저비용항공사 소속 여객기와 충돌할 뻔한 적도 있다.

현재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등 국제사회에서는 비행 안전을 주의하라고 경고하는 지역으로 지저정한 바 있다.

항공안전 분야에도 한·일 관계 먹구름

이에 한·중·일 세국가는 지난해 10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주재로 항공회랑 정상화를 위한 실무그룹을 구성하기로 합의하고 협의를 진행 중이다.

한국 정부는 관제권 환수를 목표로 하는 가운데 안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제주 서귀포 인근 상공을 가로지르는 한·중·일 연결 신항로를 만들어 항공회랑과 교통량을 분산하는 방안은 지난 7월 ICAO와 중국·일본 측에 제시했다.

기존 항공회랑은 일본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한 방향으로만 사용하고, 신항공로는 한국이 전적으로 관제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 방안에 대해 ICAO와 중국과는 협의가 잘 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거부하면서 협의에 난항을 겪고 있다.

현재 일본 정부는 기존 항공회랑 안에서 복선으로 길을 내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항공로 교차지점 증가 등으로 안전 문제가 악화될 우려가 있어 한국과 ICAO가 모두 반대하고 있다.

실무협의에는 참석했던 일본은 한국의 차관급 회담 개최 요구(4월)에 아직 응답하지 않고 있다. 7~9월 추가협의 기간에도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며 기존 항공회랑을 복선화하자는 주장만 되풀이하는 중이다.

일본은 한국의 제안대로 신항로를 만들면 30마일 가량 이동거리가 늘어 비행시간과 유류비가 증가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본적인 반대 이유는 관제권이 한국으로 넘어갈 경우 그동안 없었던 제약이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최근 한일관계가 급격하게 악화된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

국토부는 ICAO·중국·일본과 협의를 계속 진행하는 동시에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방안을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김현미 장관은 지난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근 제주남단 ‘항공회랑’에서 항공기가 안전거리 이내로 두 차례나 근접하는 등 안전이 매우 취약하다”며 “제주남단 항공회랑 정상화를 위해 일본 정부가 국제간 협의에 책임있는 자세로 임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지난 6일 일본 후쿠오카 관제소가 국제 기준에 부합하게 관제업무를 제공하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일본 항공당국에 요청했다. 한국 정부의 안전감독도 추진할 계획이다.

또 항공회랑 주변 공역에 대해 매해 1~2회 안전평가를 실시하고, 국제사회와 협의해 항공회랑을 운항하는 항공기의 공중충돌경고장치 정비 기준을 강화하는 조치도 연말까지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사진제공=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다정 기자 92ddang@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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