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톡에서 찾은 고려인의 발자취와 다문화의 수용성

이진경 시인 / 기사승인 : 2019-10-01 13: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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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시인. 수필가, 인천문인협회·국방문화예술협회 문학분과위원장, 인천대학교 사회과학원 연구원, 어울림이끌림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JG사회복지연구소 대표, 문학공간 신인문학상 수상, 대한민국 공로봉사 대상 수상, 인천대를 빛낸 인물 수상 등 다수.

[스페셜경제=이진경 시인]러시아 블라디보스톡 공항을 나서자 잿빛 하늘은 무겁게 가라앉아 보였다. 이국적 풍경의 공항을 배경으로 사진부터 찍기 시작했는데 그곳은 벌써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동양과 유럽의 문화가 공존한다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역사적인 고려인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다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기도 했다. 우리 일행은 인천광역시 연수구 ‘함박마을’에 집단을 이루고 있는 고려인들의 증가에 대한 사전 이해와 정보의 필요성에 있어서 우선 ‘고려문화원’을 방문했었다. 그리고 미래의 삶은 다문화가 경쟁력일 수 있고 ‘문화는 달라도 우리는 하나’라는 슬로건의 실천적 의미로 블라디보스톡 방문이 이뤄졌다. 


한국 유학으로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갖춘 러시안 가이드가 실타래처럼 풀어놓는 블라디보스톡의 역사며, 현재 러시아는 자본주의사회라는 명백한 정치적 상황변화와 근대사의 스토리텔링을 따라 고려인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었다. 고려인은 1863년 400명, 1891년 840명이 착취와 기근을 피해 ‘연해주(프리모르스키 지구; Primorsky Kray)의 지신허 마을’로 이주해 첫 집단촌을 이뤘다. 그 신한촌(新韓村)에서는 1914년 최초 망명정부인 대한광복군정부도 조직 됐으며 규모가 커지자 1920년 일본군에게 방화, 파괴로 300명이 학살됐던 ‘4월 참변’을 당하기도 했다.

게다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의 역사는 신한촌을 뿌리째 뽑아 버렸으나, 다행히 사단법인 한민족연구소에서 ‘3.1 독립선언’ 80주년을 맞아 국민 후원금으로 기념탑을 세웠다. 고려인에게는 마음의 상처를 위로하고자, 후손들에게는 역사인식을 일깨워 주고자 ‘민족은 하나’라는 컨셉(concept)으로 구성한 기념탑이었다. 우리 정부가 세운 기념비가 아니다보니 관리부실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를 안고 돌아섰다.

1937년 스탈린은 고려인들을 강제 이주시킬 때 ‘혁명광장’에 집결시켰다고 하니 영문도 모른 채 당시 두려움의 웅성거림이 들리는듯해 가슴이 먹먹했다. 광장은 드넓어 여유로운 일상의 모습만을 보여줄 뿐 만감이 교차하기도 했다. 연해주에는 헤이그 특사 이상설, 독립전쟁 영웅 홍범도, 간도관리사를 지내고 의병 조직한 이범윤 등 독립운동의 요람이었다. 민족지도자 최재형 선생의 거주지에서는 ‘일제에 대한 저항의 방향성’을 고민한 흔적들을 볼 수 있었으며 고려인박물관은 치열했던 독립투쟁과 힘겨웠던 고려인 삶의 잔상들을 고스란히 전시하고 있었다.

현재 고려인들은 ‘우수리스크’에 3만 명 정도 코리아타운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고, 블라디보스톡에 1천 명 정도 남아 있다고 한다. 고려인들이 강제 이주한 중앙아시아의 방문은 아직 이루지 못하고 있으나 전해지는 이야기는 따뜻하기도 하다. 배를 곯아 고려인 엄마들의 젖이 나오지 않을 때 우즈베키스탄 여성들은 대신 젖을 물려주기도 했으며, 목화농장 등에서 힘들었던 고려인들의 성실한 노동생산력이 우즈베키스탄 경제의 마중물 역할도 했다고 한다.

고려인은 민족적으로 생경한 환경 조건 속에서 한국의 전통 문화적 요소는 많이 잃었지만, 특이하게도 한국, 러시아, 소비에트, 중앙아시아, 심지어 유럽 문화까지 통합할 수 있는 ‘유라시안 코리안 문화’를 창조했다. 혼합된 문화에서 그들은 근면했고 모든 민족과의 중립적 관계로 다른 인종 집단의 눈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제 고려인의 후손들은 대한민국을 찾아 다양한 문화와 희망을 품고 지역사회에서 상생하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Durkheim)은 “사회의 유지와 안정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들 간의 상호의존성인 사회연대성 개념을 도입, 사회 유지와 안정에 필요한 여러 측면의 공통요소를 아동에게 심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며 문화의 연대성을 강조했다. 따라서 사회복지정책과 정책수요자가 대면하는 지역사회 공간은 개인의 복지 증진을 위한 기초적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급변하는 다문화사회에 우리는 자녀들과 함께 문화공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흔히들 지역사회복지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는 있지만 주민의 관점에서 논의하기보다는 행정실적 위주의 대상자 서비스 계획에만 초점을 두고 있지는 않나 성찰해봐야 한다. 그 이유는 해외동포들은 물론 이주민들의 정착이 장기적인 현상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다문화의 수용성 확장은 지역사회발전의 중요한 정책적 지향점이 돼야 한다. 개인의 삶에 있어서 사회연대성이야말로 공동선의 지향으로 고려인, 이주민 모두 ‘함께함’을 이룰 때 그 참다운 의미가 이뤄진다. 복지증진을 위한 다양성에서 이방인(異邦人)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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