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일본 수출규제에 대한 분쟁 대응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유명희 본부장은 브리핑에서 일본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제한조치를 WTO에 제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19.09.11.

[스페셜경제=김수영 기자] 정부가 11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다. 지난 7월 4일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을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로 전환한 지 69일 만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정부는 우리나라 이익을 보호하고 정치적 목적으로 교역을 악용하는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일본의 조치를 WTO에 제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유 본부장은 WTO제소 배경에 대해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는 일본 정부의 각료급 인사들이 수차례 언급한 데서 드러난 것처럼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한 정치적 동기로 이뤄진 것이며, 우리나라를 직접 겨냥한 차별적 조치”라 설명했다.

WTO제소는 ‘양자협의 요청 서한’을 일본 정부(주제네바 일본 대사관)와 WTO 사무국에 전달하면서 공식적으로 개시된다.

이후 2개월 동안 일본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WTO 재판부에 해당되는 패널 설치를 요청한다. 최종심에서 소송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2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제소장에 해당하는 양자협의 요청서에서 일본의 WTO 협정의무 주요 위반사항을 크게 세 가지로 봤다.

먼저 일본이 7월 3개 품목에 대해 한국만을 특정해 개별허가로 전환한 것을 WTO의 근본 원칙인 차별금지, 특히 최혜국 대우 의무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또 수출제한 조치의 설정 및 유지 금지 의무에도 위반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정부가 사실상 자유롭게 교역하던 3개 품목을 수출 건별로 개별허가를 받도록 하면서 기존에 누리던 간소화 혜택(포괄허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국내 기업, 특히 일본 정부의 자율준수인증프로그램(CP) 인증을 받지 못한 일본 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들은 특별일반포괄허가 혜택조차 누릴 수 없어 큰 위기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기존에는 포괄허가를 통해 통상 1~2주가 소요됐지만 개별허가로 전환되면서 최장 90일까지 소요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다가, 일본 정부가 비전략물자라도 군수용도로 사용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면 캐치올 규제를 통해 임의 규제 또한 가능하기 때문이다. 백색국가들은 캐치올 규제가 면제된다.

실제로 수출 제한 조치가 발효된 지난 7월 4일 이후 현재까지 일본 정부의 허가가 떨어진 경우는 3건에 불과하다.

또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정치적 이유로 교역을 자의적으로 제한하는 것으로, 무역규정을 일관되고,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의무에도 저촉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공급국인 점과, 이번 일본의 수출 규제조치가 해당 품목에 대해 우선적으로 이뤄진 점을 고려하면 이번 일본의 조치는 세계 반도체·디스플레이 시장에도 불확실성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통상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경영 불확실성 타개를 위해 정부가 시급히 일본을 WTO에 제소하는 등 확실한 결론을 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다만 이번 정부의 WTO 제소에 지난달 28일 부로 발효된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조치(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는 포함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제도만 변경된 상태고, 수출무역관리령 시행세칙인 ‘포괄허가취급요령’에 구체적 규제품목 등이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차후에라도 백색국가 제외로 인한 수출제한 효과와 증거가 쌓이면 소송에 추가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일찍이 일본이 수출규제에 대해 WTO 자유무역 협정에 어긋난 경제보복이라면서 WTO에 제소할 방침임을 누차 강조해왔다.

7월 말 WTO 일반이사회에 한국 대표로 다녀온 김승호 산업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제소를 위해)열심히 칼을 갈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번 WTO 제소와 더불어 이르면 다음 주 중 우리 정부 또한 일본을 한국의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할 방침이다.

정부는 지난달 12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맞서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전략물자 수출입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 했다. 행정절차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행정예고 기간을 20일 이상으로 정해 의견수렴 절차 등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수영 기자 brumaire25s@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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