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금수납원 ‘정규직’ 된다는데 왜 시위할까”
[스페셜경제 = 김봉주 기자] 한국도로공사가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의 ‘자회사 정규직 전환’을 추진중이라며 고용안정 방안을 마련하기로 한 가운데 요금수납원들은 도리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규직 전환이라는데 반대하는 이유가 뭘까. 요금수납원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는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이 파견·용역과 같은 인력회사를 통한 간접고용이나 다름없어 고용불안에 떨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자회사 정규직은 주기적으로 계약을 다시 체결해야 일할 수 있어 해고당하기 쉬운 환경에 놓여있다. 도로공사 요금수납원들은 지난 5일 청와대 앞에서 도로공사의 해고 철회와 직접고용을 촉구하면서 이날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시위하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한국도로공사는 지난 1일부터 31개 영업소 요금수납원 404명 가운데 315명을 자회사 소속으로 정규직 전환하는 과정에서 자회사 전환을 반대한 92명을 해고했다.
도로공사 노동조합 측은 도로공사의 자회사 전환 강행은 공사의 요금수납원들을 정규직화하지 않으려는 꼼수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합원에 따르면, 요금수납원들은 본래 2009년까지만 하더라도 도로공사의 직접고용 노동자였지만 2차례 구조조정을 거친 뒤 수납원 6718명은 용역업체 소속인 간접고용 노동자로 전환됐다. 이에 노동자들은 ‘한국도로공사가 사용자라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1·2심)에서 불법파견이 인정돼 ‘도로공사에 직접 고용된 정규직’임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해당 소송은 도로공사의 상고로 인해 대법원에 2년 넘게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만약 대법원에서도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이 나면 도로공사는 꼼짝없이 직접고용을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수납원들의 자회사 전환 강행이 ‘직접고용을 피하려는 꼼수’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국토교통부에 도로공사가 자회사를 승인받은 과정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한 도로공사 노조관계자는 “도로공사가 허위로 국토교통부에 수납원 6000명 모두 자회사에 동의했다고 보고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도로공사의 자회사를 승인했고 기획재정부도 자회사 승인 절차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에 수납원들의 고용상황에 대해 수차례 이야기했음에도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승인한 자회사 전환을 통해 (한국도로공사의 불법파견이라는) 법원 1·2심 판결을 무력화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고용’을 두고 벌어지는 한국도로공사와 요급수납원들의 팽팽한 줄다리기 싸움을 조명해보기로 했다.
고용 불안정한 ‘자회사 고용’ 거부하면 해고·기간제근로
수납원들 “자회사 공식 출범시 2000명 집단해고 우려”
내달 한국도로공사의 자회사 공식출범을 앞둔 가운데 한국도로공사 정규직 전환 민주노총 투쟁본부(약 250~300명)는 5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었다. 투쟁본부 측은 도로공사가 지난 1일옥 계·망상·남양·신림영업소 등 17개 영업소에서 총 92명의 요금수납원을 해고했다면서 “한국도로공사가 자회사를 만들어 요금수납원의 이동을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는 수납원을 해고하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나섰다. 도로공사는 자회사 전환을 동의하지 않는 수납원들에 해고 통보를 내리고 있다. 자회사 전환 동의 서명에는 “노조측이 승소해도 자회사에 잔류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노총 투쟁본부 “자회사 기간제 도입은 법원의 판결 자체를 무력화”
민주노총 투쟁본부는 이날 결의대회에서 “법원의 1심과 2심 판결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자회사와 기간제 도입을 단연코 거부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간접고용 형태로 계약돼있는 요금수납원들은 도로공사를 상대로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전국톨게이트노동조합은 지난 2015년 도로공사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집단 소송을 냈고 서울동부지법은 ‘외주업체 소속으로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2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라’고 판결냈다. 이어 2017년 2심에서도 같은 판결이 나왔다. 도로공사 요금수납원이 불법파견 노동자인 것으로 판결나 ‘도로공사에 직접 고용된 정규직’임이 인정된 것. 하지만 이후 도로공사의 상고(제2심 판결에 대한 불복신청)에 따라 해당 소송이 법원에 계류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로공사는 자회사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투쟁본부는 “도로공사가 직접 고용을 피하려고 자회사 전환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본다”고 꼬집었다.
투쟁본부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면담을 신청하는 서한문을 통해 “(한국도로공사의) 자회사가 공식출범하는 7월1일 약 2000명의 요금수납원 노동자들이 집단해고를 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노동자들이) 대법원 최종판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자회사 전환을) 추진하는 것으로 불법파견 판결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불법 부당한 처사”라고 밝혔다. 투쟁본부는 매일 영업소 출근투쟁과 매주 수요일 청와대 앞 결의대회 진행 등 강도 높은 항거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한국도로공사는 최근 국토교통부의 승인으로 탄력받아 자회사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일에는 31개 톨게이트 영업소 요금수납원 404명 가운데 315명을 자회사로 전환했다. 내달 1일부터는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애초 도로공사의 자회사 전환은 노동자와 사용자간 협의된 사항이 아니었다. 앞서 도로공사는 2017년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정책에 따라 요금수납원의 정규직 전환 방식을 논의하기 위한 ‘노·사·전문가 협의회’를 구성했지만 직접고용을 주장하는 일부 노동자들의 반발에 갈등을 빚자 일부 노동자대표를 배제한 뒤 자회사 전환 동의서에 서명 받는 식으로 전환이 진행됐다. 한 요금수납원은 “도로공사가 영업소마다 돌아다니며 자회사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기간제로 고용하고 요금수납원 업무 말고 도로정비나 조무원, 시설관리 일을 시키겠다고 협박했다”며 자회사에 반대하는 2000명을 집단 해고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우려하는 심정을 밝혔다.
요금수납원 “수년간 잘못된 용역 계약으로 피해 입었다”
요금수납원 노동자들은 “우리는 수년간 잘못된 용역 계약으로 피해를 봤다”며 “도로공사의 요금수납원 자회사는 독립된 업무구분과 경영구조가 없는 또 다른 용역회사일 뿐이라 한국도로공사의 예산지원이 없이는 노동자들의 고용불안과 처우개선을 보장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2009년까지만 해도 직접고용 상태였던 것이 용역업체 소속으로 ‘외주화’ 되어 간접고용 상태로 전환됐고, 이제는 자회사 전환 추진으로 고용과 처우가 더욱 불안정해졌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요금수납원들은 자회사 전환을 거부하고 자신이 원래 일하던 영업소로 출근하는 투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회사 전환에 반발하는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은 11일 강원 원주시 신림영업소 앞에서 집회를 열고 “한국도로공사는 자회사 추진을 중단하고 요금수납원을 직접 고용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고용 안정 정책’에 입각해 도로공사가 ‘직접 고용’을 이행하라고 촉구하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공약 가운데 고용안정과 직접 고용을 통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이행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국토부와 도로공사의 행정이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정책에 완전히 반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사진제공=뉴시스,한국도로공사)
스페셜경제 / 김봉주 기자 seraxe@speconom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