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주사 대표”…수시로 실무진과 소통하며 현안 챙겨
“고객 마음 빠르고 정확하게 읽어야”…디지털 전환 선봉장
‘미래 가치’ 사업은 키우고 수익성 낮은 사업은 과감히 정리
“과감하게 도전하지 않는 게 실패”…협력도 대응도 강화

▲구광모 LG그룹 회장 (사진 제공=LG그룹)

 

[스페셜 경제=변윤재 기자] 40. 공자는 마흔을 일컬어 불혹이라 했다.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서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는 의미다. 20대의 도전과 30대의 경험을 바탕으로 목표가 더욱 뚜렷해지고 추진력있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29일 취임 2년을 맞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흔들리지 않고 오롯히 행하는불혹의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경영자다. 부친인 고() 구본무 회장의 별세로 2018년 갑작스럽게 그룹 총수의 자리에 올랐을 당시, 우려 섞인 시선이 더 많았다. 갓 마흔을 넘긴 그가 69개 계열사는 거느린 국내 굴지 그룹을 이끌 수 있을까에 대해 재계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지켜봤었다. 더욱이 시민사회 등에서는 검증된 후계자인지에 의구심을 제기하며 경영권 대물림에 대해 비판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구 회장은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듯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LG를 혁신해나가고 있다. LG천년의 미소로 유명한 신라시대 유물 얼굴무늬 수막새CI(Corporate Identity) 모티브로 삼을만큼 인간, 사회에 대한 관심을 경영 전반에 녹여왔다.

 

구 회장은 선대의 인간 중심 경영에 혁신의 DNA를 더했다. 4차 산업혁명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라는 격변기 속에서, 군살(관행·비핵심사업)은 빼고 근육(디지털 전환, 고객 가치)을 붙여나가며 선대 회장이 일군 초우량기업’ LG의 미래를 만들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해 8월 LG화학 기술연구원을 방문한 구광모 회장이 차세대 OLED 핵심 공정 기술인 솔루블 OLED'에 대해 임직원들과 논의하고 있다 (사진 제공=LG그룹)
홍보할 시간에 실무자와 소통

 

수행원 없이 단촐하게 마곡 LG사이언스파크를 수시로 찾는 걸로 압니다. 전략을 점검하는 것 외에도 의문스러운 점이 생기면 직접 실무자를 만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요. 현장의 아이디어나 의견을 들으려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편이죠.” (LG 그룹 관계자)

 

그룹의 홍보는 오너의 동정을 기본으로 깔고 간다. 그러나 LG는 다르다. LG 관계자의 말처럼 구 회장이 자주 찾는데다, 조용히 움직여야 실무진과 긴밀하게 소통하기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1번의 홍보보다 10번의 실리를 택한 것이다. 지난 4월 조용히 LG유플러 콜센터를 찾아 어려운 상황에서도 고객 목소리가 실시간으로 가장 먼저 전달되는 최일선이 이 곳이라며 직원들을 격려했던 것도 뒤늦게야 알려졌다.

 

이처럼 구 회장은 보다 실용적으로움직이면서 LG를 바꾸고 있다. 불필요한 격식을 일체 줄이거나 없앴다. 취임식은 과감하게 생략했고, ‘회장대신 지주사 대표라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직급 체계를 간소화한 데 이어 완전자율복장제도 전 근무일로 확대, 리더 없는 날 도입 등을 통해 직원 개개인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보고 및 회의 형식도 많이 바뀌었다. 일방적인 보고 체계를 토론 형식으로 바꿨고, 아예 각 프로젝트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실무 책임자에게서 구 회장이 직접 관련 내용을 챙긴다. 매년 상하반기 두 차례 진행해 온 사업보고회는 하반기 1회로 축소했고 분기별로 400여명이 참여하는 임원 세미나 또한 월별 100여명이 참석하는 LG포럼으로 간소화했다.

 

특히 기존의 관행을 벗어난 인사를 통해 조직에 혁신 DNA를 심었다. 취임 첫 해와 이듬해 성과주의에 입각해 인사를 단행하고 100명이 넘는 신규 임원을 발탁했다. 1947년 창립 이래 처음으로 외부인사인 3M의 신학철 부회장을 LG화학 최고경영인(CEO)으로 발탁하며 순혈주의를 깨고 세대교체를 이뤘다.

 

디지털 전환으로 고객 가치 선명하게


"모든 것을 고객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페인 포인트는 고객이 우리에게 바라는 모든 것이고, 고객의 마음을 정확하고 빠르게 읽기 위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올해 초 신년 영상 메시지에서 밝혔듯 구 회장은 디지털 시대, 기술 변화와 고객을 이해할 때 고객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구체적으로 디지털 전환을 통한 혁신을 통해 고객 가치를 더욱 선명히 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목소리 내왔다.

 

구 회장은 디지털 전환의 선봉장에 서며 변화를 솔선수범하고 있다. 올해 1월 신년 시무식을 온라인으로 진행했고 신년사는 동영상으로 만들어 전세계 임직원들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코로나19가 국내외에서 한창 확산했던 4월 초에는 사장단에게 이메일을 통해 "어려울 때일 수록 더욱 자신감을 갖고 LG만의 고객을 향한 기본에 집중하자"고 당부했다. 같은 달 말에는 계열사 최고경영진들과 화상회의를 열어 포스트코로나 대응 전략을 논의했다. 5월에는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를 찾아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줄 디지털 전환, 인공지능(AI) 등 혁신 기술로 미래 기회를 선점하자고 주문했다.

 

구 회장의 주문에 따라 제조업 기반인 그룹 전 계열사가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계열사 정보통신(IT) 기술을 올해 50% 이상, 2023년까지는 90% 이상 클라우드로 전환할 방침이다. 디지털 전환(DX) 전담조직도 만들어 주요 소프트웨어 표준화, 업무지원로봇과 언어 자동번역 시스템 도입 등 경영 전 과정을 디지털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될성 부른 사업키워 성장 동력 확보

 

구 회장은 평소 인문,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과 폭넓게 교류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자로서 시야를 넓혀 미래전략을 기획하고 경영적 결단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이는 사업분야에서의 선택과 집중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유망한 사업은 키우고 성장 가능성이 적은 사업은 과감하게 접는 식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LG화학. 지난해 1조원을 들여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전기차 배터리 합작공장을 설립하는 계약을 맺고 얼티엄 셀즈합작법인을 세웠다. 덕분에 LG화학은 올해 1분기 중국 CATL, 일본의 파나소닉을 제치고 1위에 등극했다.

 

LG유플러스는 5세대 이동통신(5G) 융복합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말 ‘LG헬로비전을 출범하며 유료방송 가입자 수 기준 시장 2위 사업자로 올라섰다. LG디스플레이도 차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에만 20조원을 투자하며 OLED 대세화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LG CNS는 지난 4월 맥쿼리그룹이 지분 35%를 약 1조원에 인수하면서 일감몰아주기 우려를 해소하고 맥쿼리가 가진 사업 역량을 바탕으로 신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반면 비핵심사업을 정리함으로써 성장의 추진력을 더하고 있다. LG화학은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로 수익성이 악화한 액정표시장치(LCD) 편광판 사업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LG디스플레이도 올해 말부터 국내에서 TVLCD 패널을 더는 생산하지 않기로 했다.

 

LG전자는 지난해 평택에 있던 스마트폰 생산기지를 베트남 하이퐁으로 이전했고, 최근에는 구미사업장의 TV 생산라인을 인도네시아로 이전한다고 밝혔다. 최근 TV 시장 정체가 지속되자 글로벌 생산지를 효율화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이외에 지난해와 올해 LG전자의 연료전지 사업과 수처리 사업, LG유플러스의 전자결제 사업 등을 매각했다.

 

협력은 과감하게 대응은 독하게

 

나아가 구 회장은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하지 않는 것이 실패라고 강조했던 것처럼 과감한 투자와 협력으로 외연을 넓히고, 독하게 싸워 먹을 거리를 확실히 지키는 모습이다.

 

LG전자의 오스트리아 차량용 조명회사 ZKW 인수, 산업용 로봇전문 기업 로보스타 경영권 인수, LG생활건강의 미국 뉴에이본과 일본 에바메루, 유럽 피지오겔 등 인수, LG화학의 미국 자동차 접착제 회사 유니실 인수 등 성장사업에 대한 인수합병(M&A)이 이어지고 있다. LG전자, LG디스플레이 등 5개 계열사가 출자한 기업 벤처캐피털 ‘LG테크놀로지벤처스를 통해 미국 실리콘밸리 유망 스타트업 18곳에 약 4600만달러(550억원)를 투자했다. 모두 인공지능(AI), 로봇, 자율주행 등 LG가 관심을 가지는 신기술 분야 스타트업이다.

 

인재 양성에도 적극적이다. 계열사 추천으로 선발된 미래 인재들을 육성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신설했고, 지난해 10월 이 가운데 100여명과 직접 만찬을 가지기도 했다. 이공계 연구개발 인재를 초청하는 ‘LG 테크 컨퍼런스에도 직접 참여하며 인재 유치에 나섰다. 정기 공채 대신 수시 채용으로 바꿔 직무능력이 뛰어난 인재가 우선 발탁될 수 있게 했다.

 

대내외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LG사이언스파크를 통해 AI·빅데이터·AR·VR·바이오·5G·전장·배터리·신재생에너지 등에서 협업을 통한 기술 개발을 있다. 협력사, 중소기업, 스타트업과의 상생의 AI 생태계 구축에도 앞장서고 있고, LG전자와 LG유플러스가 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네이버 등과 다양한 협업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지난 22일 구 회장이 직접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과 전기차 배터리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이에 반해 LG에 타격을 입히는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해졌다. LG화학-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처리 기술 유출 소송전, LG생활건강-애경산업의 치약 상표권 소송, LG전자-삼성전자의 가전제품 신경전 등이 대표적이다.

 

차별화는 성공뚝심의 리더십 필요

▲구광모 회장이 지난 2월 LG전자 서초 R&D 캠퍼스 내 ‘디자인경영센터’를 방문해 출시 예정 제품들의 디자인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제공=LG그룹)
 

구광모식 체제를 다지고 있는 현재, 구 회장에 대한 여론과 재계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9200여억원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 상속세를 착실하게 납부하면서 재벌상속이라는 논란을 잠재웠다. 충남 서산 LG화학 공장에서 화재사고가 나자 즉시 내려가 현장을 살폈고, 가스누출 사고가 난 인도공장에 현장 지원단 급파하며 오너 경영의 장점을 부각시켰다.

 

재계 관계자는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LG의 체질을 바꿔놓고 있다미중 무역분쟁과 코로나19, 글로벌 기술 경쟁 속에서 구 회장은 중심을 잡고 경영 불확실성을 없애고 LG의 미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코로나19 여파로 삼성전자 들이 실적 부진이 우려되고 있지만, LG는 전자와 화학 등 주요 계열사의 실적이 개선됨에 따라 지난해보다 영업이익이 70% 가까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차별화에 성공한 만큼, 앞으로 구 회장은 자신만의 색깔을 뚜렷히 하면서 위기 관리와 지속적인 성장을 동시에 이뤄야 한다. 포스트코로나 대비책에 속도를 올려야 한다. 또 장기간 적자에 빠져 있는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 LG디스플레이의 OLED 전환, LG화학 공장의 안전사고 재발 방지,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의 1위 수성도 숙제다.

 

이를 위해 선대 회장처럼 뚝심있는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소통과 개방을 통해 조직에 유연성을 더했으니 이제는 더욱 정밀한 선택과 집중으로 LG만의 선도사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기업지배 전문가는 도전과 혁신문화를 LG에 심어 역동적인 기업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라며 무게감이나 추진력을 더해, 가전 외에도 대중이 LG 하면 떠오르는 먹거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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