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경제5단체장 모두 기업인으로
구심점 잃은 경제계…반기업법 앞에 무력
‘기업 스피커’ 기대 속에 ‘소통에 의의’ 지적도

경제5단체장이 15년 만에 기업인으로 채워졌다. 경제계 안팎에서는 기업 경영활동 개선을 위한 소통 활성화와 협력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읽힌다. (왼쪽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 허창수 GS건설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김기문 제이에스티나 회장. (사진=각 사) 
경제5단체장이 15년 만에 기업인으로 채워졌다. 경제계 안팎에서는 기업 경영활동 개선을 위한 소통 활성화와 협력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읽힌다. (왼쪽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 허창수 GS건설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김기문 제이에스티나 회장. (사진=각 사)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총수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국내 주요 경제단체 수장을 맡게되서다. 

사안에 따라선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야 하는 탓에 실익이 적은 경제단체장은 기피대상이었다. 그러나 최근 그룹의 총수들이 경제5단체 중 네 곳을 이끌게되면서 ‘스피커’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감지된다. 향후 구심점을 구축해 반기업정책에 업계의 입장을 적극 대변하고 연합전선을 형성해주길 바라는 분위기다. 

23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서울상공회의소 회장에 공식 선출됐다. 서울상의 회장은 대한상의 회장을 겸직하는데, 국내 4대 그룹 총수가 대한상의 회장을 맡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앞서 지난 19일에는 구자열 LS그룹 회장이 무협 회장에 추대됐다. 구 회장은 부친인 고(故) 구평회 E1 명예회장에 이어 무협 회장을 맡게 됐다. 무협은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을 끝으로 2007년부터 관료 출신이 키를 잡았다. 

전경련은 허창수 GS건설 회장(GS그룹 명예회장)이 4연임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고, 경총은 손경식 CJ그룹 회장이 선장 역할을 하고 있다. 중기중앙회는 김기문 제이에스티나 회장이 2019년 3선에 성공하며 이끌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은 물론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한국무역협회(무협),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 수장자리가 모두 기업인으로 채워진 것은 15년 만이다. 특히 그룹 총수가 주요 경제단체장을 동시에 맡은 것도 모처럼만이다. 그만큼 기업들이 처한 환경이 녹록치 않다는 반증이다. 

지난해 기업들은 생존에 매달려야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전자 등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기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을 피하진 못했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실적을 공개한 326개 기업(국내 시가총액 500대 기업 기준) 매출액은 2106조6511억원으로 전년(2105조6307억원)가 비슷한 수준이었다. 영업이익 또한 127조631억원으로 1년 새 0.6%(7839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마나도 비대면 효과를 누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매출은 0.6%, 영업이익은 10.2%나 감소했다. 

기업의 경영 환경은 올해에도 안갯속이다. 코로나19 장기화 속에 미국·유럽에서의 친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한국을 둘러싼 마국·일본·중국 등과의 역학관계도 복잡해졌다. 재보궐선거와 대통령선거까지 굵직한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기업규제도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이로 인해 재계를 중심으로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 경제단체를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예전에는 그나마 전경련이 맏형을 맡아 적극적으로 친시장·친기업 정책을 제안하고 목소리를 내왔지만, 국정농단 사건 이후로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이 잇따라 탈퇴하고, 청와대가 대한상의를 소통창구로 삼으면서 스피커 기능이 사실상 사라졌다.

전경련을 대신해 구심점 역할을 할 단체도 마땅치 않았다. 경총이나 무협은 노사관계, 수출기업에 각각 특화돼있고, 중기중앙회는 중소기업을 대변한다. 대한상의는 소상공인과 중소·중견기업에 좀더 무게를 둬 왔다. 전문영역이 확실한 만큼, 활동 영역에서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지난해 상법이나 노동조합법 개정 등 정부·여당이 소위 반기업법을 추진할 때도 경제계는 합치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일각에서 경제단체 간 통합론을 거론하며 쇄신을 주장하는 것도 ‘밀릴 수 없다’는 기업의 위기감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상법과 공정거래법 등 이른바 공정경제3법 제·개정을 앞두고 경제단체들은 각개 전투를 벌였다. 대한상의는 전경련, 경총 등과 따로 의견서를 냈다. 경총은 손경식 회장이 직접 수차례 국회를 찾았고, 중기중앙회는 경총 등과 함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책간담회를 개최했다. 

최 회장이나 구 회장이 경제단체장을 수락한 것도 정부에 기업 입장을 적극 전달·설득할 인물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한 결과로 분석된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의 안정적 경영이 우선시돼야 하는 입장에서 경제단체장을 맡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전문경영인 체제가 확립됐다 해도 단기 성과를 낼 수 없는 대규모 투자 등은 오너가 아니면 섣불리 결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며 “고민이 많았을테지만 수락한 건 기업의 입장이 관련정책에 반영되지 못했다는 불만이 있었다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다만 경제단체장이 기업인, 특히 그룹의 총수가 맡는다고 극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단체의 위상이 예전만 못해서다. 종전처럼 재계 또는 중견기업에 한정짓기 어려운 IT 스타트업이 급성장하는 가운데, 정경유착이라는 따가운 시선도 한층 강해졌다. 재계 전문가는 “정부와 기업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하고 경영 환경 개선에 목소리를 낼 구원투수가 필요한 건 사실”이라면서 “정책과 관련된 부분은 정치적 파워에 좌우되는 측면이 크기 때문에, 기업의 공통 현안에 대해 합일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것에 의의를 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경제단체의 역할에 대해 성찰할 때가 됐다는 게 경제계 안팎의 공통된 의견이다.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이라 산업계 지형 변화를 담아내기에 한계가 있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같은 신경영 기조를 반영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었다. 대기업 편중의 친기업정책에서 벗어나 친시장정책으로 시선을 넓혀 적절한 정책제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단 경제단체들도 변화의 방향성을 타진 중이다. 대한상의는 최 회장이 수장이 맡으면서 외연을 확장했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이한주 베스핀글로벌㈜ 대표,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등 IT와 금융, 스타트업 대표를 영입해 산업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무협은 수출기업의 이해관계를 적극 대변하는 데 초점을 맞출 예정이고, 경총은 재계 현안에 대한 연구 역량을 강화 중이다. 전경련은 ESG 경영에 초점을 맞춰 사업방향을 전면 재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기업 관계자는 “IMF 당시 정부에서 빅딜을 강제적으로 추진할 때 전경련이 큰 역할을 하지 못한 이후로 ‘경제단체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기업인들이 경제단체장을 맡았으니 이전보다는 소통이 원활해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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