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효율이 AP 경쟁력 좌우

반도체 칩셋 관련 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뱅크)
반도체 칩셋 관련 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뱅크)

[스페셜경제=최문정 기자]스마트폰의 성능을 좌우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성능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현재 AP 시장은 폐쇄적인 생태계와 소품종 생산을 무기로 기기와 AP의 최적화를 앞세운 애플, 통신 모뎀 점유율을 바탕으로 통합 칩셋 시장에 발을 들인 퀄컴, 종합반도체 기업의 꿈을 품고 1년 만에 AP 시장의 주역으로 떠오른 삼성전자 등 3사가 주도하고 있다. 3사는 특히 사용자들에게 가장 직관적으로 와 닿는 배터리 효율 개선에 역량을 집중하는 모양새다.

AP는 일반 데스크톱 컴퓨터의 CPU의 기능을 수행한다. 즉, 모바일 기기의 두뇌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을 수행하기 위한 연산부터 멀티미디어까지 기기를 사용하는데 필요한 모든 명령이 AP에 전달되고, 이를 AP가 처리해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AP의 효율이 곧 스마트 기기의 성능으로 이어지게 된다. 또한 AP가 얼마나 꼭 필요한 연산만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느냐에 따라 사용자가 체감하는 배터리 사용 시간이 늘어나기도 한다. 일반 데스크톱 PC처럼 항상 전력이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공간에 제한된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해야 하는 스마트 기기에선 실제 배터리 용량뿐만 아니라 AP의 전력 효율도 실질적인 사용시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전성비(전력 대비 성능)’이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현재 애플, 퀄컴, 삼성전자 등의 AP 제조기업들은 전성비를 끌어올리기 위해 반도체 설계업체인 Arm의 ‘ARM big.LITTLE 솔루션(이하 빅리틀 솔루션)’을 활용하고 있다. 이는 고성능의 칩셋만을 탑재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발열, 배터리 소모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으로, 고성능 코어(Big core)와 중간 성능(Middle core), 저 성능(Little core) 코어 등 기능상 차이가 있는 칩셋 여러 개를 동시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빅리틀 솔루션은 고성능 코어의 기능은 활용하면서도 전력과 발열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해 사실상 AP 제조 업계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AP제조 3사의 최신 칩셋을 살펴보면, 애플의 A14바이오닉은 2개의 빅코어와 4개의 리틀코어, 퀄컴의 스냅드래곤888과 삼성전자의 엑시노스2100은 1개의 빅코어, 3개의 미들코어, 4개의 리틀코어를 탑재했다.


애플의, 애플을 위한, 애플에 의한 A 시리즈

A14 바이오닉 칩셋 이미지 (사진=애플)
A14 바이오닉 칩셋 이미지 (사진=애플)

애플은 여타의 AP 제조사들과는 정반대의 노선을 걷고 있다. 즉, 오로지 아이폰, 아이패드 등 자사 기기에만 탑재할 목적으로 AP를 설계한다. 이는 애플이 매년 단 1번의 아이폰 세대만을 출시하는 것과 관계있다. 소품종을 생산하고, 오로지 그 제품의 특성에만 맞춘 AP 제작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애플의 AP 자신감은 배터리 용량에서도 드러난다. 현재 애플 아이폰의 최상위 모델인 ‘아이폰12 프로 맥스’의 경우 3687mAh(밀리암페어) 용량의 내장 배터리를 탑재했다. 경쟁 모델인 삼성전자의 ‘갤럭시S21’이 5000mAh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한 것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적은 용량이다.

아이폰12에 탑재된 애플의 A14 바이오닉 칩셋은 2개의 빅코어와 4개의 리틀코어로 제작됐다. 중간급 성능인 미들코어를 탑재하지 않고도 기기 최적화를 통해 배터리 효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의미다. 업계에 따르면 A14는 이전 세대인 A12에 비해 성능은 약 15%, 전력효율은 30%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

향후 애플은 인텔에 외주를 맡겼던 PC용 CPU도 직접 생산에 나서며 스마트폰과 PC의 칩셋 일원화를 추구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애플의 폐쇄적인 AP 경향 역시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격차 좁히는 엑시노스, 스냅드래곤 맹추격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진영에서는 삼성전자의 자체 AP 브랜드인 ‘엑시노스’와 퀄컴의 ‘스냅드래곤’ 시리즈가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

스냅드래곤888 제품 이미지 (사진=퀄컴)
스냅드래곤888 제품 이미지 (사진=퀄컴)

퀄컴은 이전의 피쳐폰 세대부터 WCDMA 규격의 모뎀칩을 생산하는 등, 휴대폰 업계의 최강자로 군림해왔다. 현재 퀄컴은 Arm의 설계를 바탕으로 이동통신과 AP가 통합된 칩셋인 스냅드래곤 시리즈를 생산하고 있다. 가장 최신 제품은 지난해 12월 공개한 ‘스냅드래곤888’이다.

삼성전자는 오는 2030년까지 메모리를 넘어 AP 등의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업계 1위에 오르겠다는 비전을 선포한 바 있다. 이러한 비전의 대표주자가 엑시노스 시리즈다. 엑시노스는 지난 2011년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한 AP로 그리스어로 스마트(Exypnos)와 그린(Prasinos)의 합성어다. 이름 자체에 고성능·저전력 칩셋을 생산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엑시노스 최신형 모델은 지난달 공개된 ‘엑시노스2100’이다.

엑시노스 이미지 (사진=삼성전자)
엑시노스 이미지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출시 국가와 상황에 따라 엑시노스와 스냅드래곤 시리즈를 플래그십 갤럭시 스마트폰에 탑재해 왔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 사이에선 스냅드래곤과 엑시노스의 성능 차이·탑재 비율이 화재가 되곤 한다.

업계에서는 지난달 삼성전자가 엑시노스2100을 내놓기 전까지는 스냅드래곤 시리즈가 다소 우위에 있었다고 평가해왔다. 삼성전자는 이러한 비판과 한계를 수용해 엑시노스2100부턴 AP를 자체 설계하지 않고, Arm에게 설계를 맡겼다. 이에 따라 성능과 전력소비량 등에서 큰 진전이 있었다는 평가다.

엑시노스는 빅 코어인 '코어텍스(Cortex)-X1' 1개 미들 코어인 코어텍스-A78' 3개, 리틀코어인 코어텍스-A55 4개를 탑재하는 트라이 클러스터(Tri-Cluster) 구조로 설계됐다. 덕분에 멀티코어 성능은 이전 모델에 비해 30% 이상 향상됐다. 또한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의 기기 자체에서 유·무선 통신에 접속하지 않고도 작동이 가능한 ‘온디바이스 AI’ 기능도 강화됐다.

소비전력 효율화를 위한 솔루션도 등장했다. 삼성전자는 ‘AMIGO(아미고)’라는 이름의 자체 전력 효율 최적화 방안을 도입해 고화질·고사양 게임과 프로그램을 구동 시 전력 소모량을 크게 줄였다.

김양재 KTB 투자증권 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 삼성전자가 퀄컴의 의존도를 줄이고 엑시노스의 비중을 확대할 것”이라며 “특히 엑시노스 2100의 성능은 퀄컴과 대등하거나 다소 우위인데 가격은 10∼20% 저렴하다는 점이 경쟁력이다. 비보, 오포, 샤오미 등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도 엑시노스 채택을 대폭 늘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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